[인문소설 춘추오패] 제23회. 장강 변에 노자와 장자가 있었다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09-23 08: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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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날지 않고 울지 않은 새…초장왕은 천하를 뒤흔들 대붕을 꿈꿨다

 


진문공과 천하를 다투었던 초성왕은 46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 대신에 세자 상신(商臣)은 나이 쉰이 넘도록 붙박이로 세자 자리만 지켰다. 그런 데다 부왕은 하루가 다르게 강건해져, 칠순이 넘어서도 젊은 여인을 밝히는 행태가 어느 세월에 죽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나이가 드니 여자를 안기도 힘들군.’ 왕은 습관처럼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말과 달리 그의 침소에는 늘 여인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도 여자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늙을수록 의심까지 많아져 수시로 세자를 감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질책을 퍼부었다. 참다못한 세자는 한밤중에 궁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바로 초목왕(楚穆王)이다.

늙은 아비를 죽이면서까지 왕위에 오른 데는 초나라의 왕위 계승 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원래 초는 폐장입유(廢長立幼, 장자를 후계에서 폐하고 어린 왕자로 대신한다)의 전례가 많았다. 그러고 보면 북방 유목민은 부모의 유산을 막내가 상속받는 풍습이 있어, 이를 말자상속(末子相續)이라고 칭했다. 어린 자식을 후계로 세우면 왕위 계승과 더불어 한 번에 조정을 일신하고, 앞으로 긴 재위 동안 안정된 정국을 이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신 결과적으로 과도기 역할을 맡았던 장자는 죄를 씌워 죽이든지 변방으로 쫓았다. 어쩌다 남겨진 폐세자도 열이면 열, 결국에는 권력을 잡은 동생의 변덕에 목숨을 빼앗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자로서는 마냥 기다린다고 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정황이 아버지 살해의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이 빚어낸 패륜 중의 패륜일 뿐이다. 어쨌든 초나라의 왕위 세습 과정은 한 치 앞을 모르게 엎치락뒤치락의 연속이었다. 선왕의 유언보다는 칼과 독약으로 판가름 나는 일이 흔했고, 그런 만치 대왕들가운데서 자연사로 죽은 자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부왕을 죽이고 즉위한 초목왕은 과연 성격이 급한데다 잔인했다. 사서는 그를 이렇게 평하였다.

갸름한 얼굴에 찢어진 눈을 가졌다. 가슴은 마치 매의 가슴처럼 도톰하게 생겼으며 목소리는 들개와 같이 스산한 소리를 낸다. 심성도 각박하여 호랑이와 이리와 같이 잔인하였다. 어려울 때는 남에게 겸손한 체하면서 도움을 청하지만 사정이 좋아지면 눈 하나 까딱 않고 상대를 해치운다.”

재위 11년 동안 수많은 신하를 참살하고 조용한 날이 없도록 자주 전쟁을 일으켰다. 대신에 상식을 벗어난 기막힌 전술을 구사하여 싸우는 족족 이겼다. 몇 해 사이에 강()나라와 육()나라, ()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그들 3국은 초나라와 마찬가지로 모두 자작의 작위를 받았던 소국들이다. 초목왕은 정복당한 나라에게도 용서나 배려가 없이 왕족을 빠짐없이 도륙하고 사직을 불태웠다. 정복자의 잔혹한 굴기는 열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어쨌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지라 진()나라와 정()나라, ()나라, ()나라는 차례대로 초나라에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기로 맹세했다. 초목왕은 이들 네 나라를 궐맥 땅으로 불러 회맹을 열었다. 왕실로부터 후작, 혹은 공작의 높은 작위를 받은 이들이 오히려 자작인 초나라 임금에게 천자를 모시는 예로써 몸을 낮췄다. 초목왕은 스스로 천하를 제패한 백주(伯主)를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도 진문공 이래 중원의 방백으로 불리는 진()나라와 서북방의 유목족 진()만은 어쩌질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천하는 초(), (), ()의 삼강이 각기 주변 열국에 군림하는 형세였다.

그러던 초목왕도 흐르는 세월은 거스를 수 없어 재위 11년 만에 죽고, 세자 웅려(雄焒)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 중 세 번째의 영걸인 초장왕(楚莊王)이다.

 

중원의 제후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던 초목왕이 죽자 완충 지대에 있던 약소국가들이 먼저 동요하였다. 유형무형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던 그들은 제각기 활로를 찾아 나섰다. 먼저 진()과 정()이 다시 중원의 강국 진()과 수교하고 초와는 관계를 끊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장왕은 즉위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정사를 돌보거나 신하들에게 명령 한 번 내린 일이 없었다. 그가 궁 밖으로 나가는 것은 오로지 사냥하러 갈 때뿐이고, 밤이나 낮이나 여자를 끼고 앉아 술만 마셔댔다. 아예 대전 앞에 커다랗게 경고의 방까지 써 붙였다.

과인의 행동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자는 예외 없이 목을 자른다.”

워낙에 파격적이고 단정적인 왕명이었다. 군왕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고 빈곤과 고생을 모르는 탓에, 반사회적이고 정신 상태가 특이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수가 많다. 선대 초목왕에게서 그런 광란 같은 횡포를 겪어온 신하들은 등허리가 섬뜩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그래서 3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충언하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에 초나라는 이제 희망이 없다!’ 이런 자조적인 수군거림이 번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대부 신무의(申無依)가 왕 앞에 나타났다. 신무의는 오십 대 초반에 한눈에 봐도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이는 인물인데, 과연 매사를 원칙대로 처리하는 깐깐한 인물이었다.

 

▲AI 생성 이미지 

 

오늘도 초장왕은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오른팔로는 정나라 여인인 정희(鄭姬), 왼팔로는 채나라 출신인 채녀(蔡女)를 안고 대청을 열어젖힌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왕년에 초성왕이 자매 쌍미(雙羋)를 함께 취한 이래로 한꺼번에 두 여인을 데리고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왕은 신무의가 주뼛거리면서 서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대부는 술을 마시러 왔느냐? 아니면 풍악을 들으러 왔느냐?”

이 시절에는 음악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사치였다. 두드리는 울림통과 날숨으로 소리 내는 날라리 통과, 가늘고 여린 현악기를 빠짐없이 갖추어야 구색을 갖춘 하나의 악단이 되고, 숙련된 가희(歌姬)까지 따라붙어야 제대로 된 악곡이 연주된다. 그것도 보관이나 재생은 생각지도 못하고 한순간에 허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소모적 감성이다 보니 웬만한 재력으로는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신은 술이나 풍악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긴장하고 기다린 시간이 길어서인지 말하는 입에서 누린내가 풍겼다. 왕은 개의치 않았다. 대신 말은 더 딱딱해졌다.

그렇다면 과인에게 간청이라도 하려고 찾아온 것이냐? 돌아가라! 과인은 그대의 목을 베고 싶지 않다.”

신이 어찌 대왕의 명을 거역하겠나이까? 다만,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있어 대왕께 여쭤보려고 온 것입니다.”

슬쩍 궁금증이 도진 왕이 물었다.

허허허!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대부가 모르는 것을 과인이 어찌 알겠는가. 예까지 온 김에 이야기나 해보시라.”

신이 며칠 전 성 밖에 나갔다가 아무개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신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대왕께 들려드리려고 왔습니다.”

헛허 그래, 어떤 수수께끼인가?”

오색 빛이 찬란한 큰 새가 있는데 그 새가 영도성 높은 곳에 앉은 지 3년이 지났답니다. 그런데 그 새가 나는 걸 본 사람이 없고 우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 새가 무슨 새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초장왕은 신무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어려운 문제라기에 귀 기울여 듣다가 갑자기 핫하하하 웃음을 참지 못했다.

흐음! 과인은 그 새를 알겠다. 그것은 흔히 보는 새가 아니다. 3년을 날지 않았다고 하니, 한 번 날기만 하면 하늘 높이 솟을 것이요. 3년을 울지 않았다고 하니, 한 번 울기만 하면 세상이 울리도록 우렁찰 것이다.”

다행히 오늘따라 왕의 기분이 괜찮았다. 한마디로 연작(燕雀, 제비와 참새)이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느냐? 알아서 기다려 봐라! 대충 이런 말이다. 때맞춰 눈치 빠른 내관이 신호를 보내자 악곡이 연주되고, 뒤이어 가희(歌姬)가 살짝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 가사가 세상을 뒤덮고도 남을 만하였다.

 

명부의 바다에 물고기가 있었으니 북명유어 (北冥有魚)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기명위곤 (其名爲鯤)

곤은 그 크기를 곤지대 (鯤之大)

몇천 린지 알 수가 없다 부지기기천리야 (不知其幾天里也)

곤이 변하여 새가 되는데 화이위조 (化而爲鳥)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기명위붕 (其名爲鵬)

붕의 등이라니 붕지배 (鵬之背)

몇천 린지 알 수가 없다 부지기기천리야(不知其幾天里也)

붕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노이비 (怒而飛)

그 날개는 하늘과 구름과 같다 기익야수천지운 (其翼若垂天之雲)

이 새 또한 시조야 (是鳥也)

바다에 태풍이 일라치면 해운즉장종어남명 (海運則將從於南冥)

남쪽 먼바다로 가는데 남명자 (南冥者)

그 바다를 일러 천지라 한다 천지야 (天地)

 

장자의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공자의 유학이 황하 유역 중원의 사상이라면, 남방의 장강 변에는 노장(老莊, 노자와 장자)이 있었다. 공자학파가 인간관계의 예의와 도리를 설파하고 끊임없이 세속의 성공을 추구하였다면 노장은 자연 속에서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이다. 현실의 권력에는 다소 냉소적인 개인주의적 사상이다 보니 위계와 질서를 중시하는 통치 권력과는 친하지 못했다. 자연은 무위(無爲,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세상의 본질은 자연이고, 인간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손님 같은 존재이니 자연에서 자족(自足,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자는 것이다. 상식과 논리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펼치다 보니 그 표현이 비현실적이고 스케일이 크다. 오늘날의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 사고와도 닮았다.

노자(老子)에 대해서는 제6(초문왕이 사랑에 빠지다)에서 곡신불사(谷神不死) 시를 소개한 바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노자가 공자를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노자는 공자에게 말했다. 덕이 가득한 군자의 겉모습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엉뚱하고 모자란 듯하오. 그런데 그대의 모습에는 교만함과 훌륭함을 가장한 태도가 가득하오.’ 노자의 눈에는 공자의 예의가 작위적으로 보인 것이다.

그런 노자의 세계관을 이어받은 인물이 장자(莊子)이다. 성은 장()이고 이름은 주()이다. 공자(孔子)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젊어서는 몽() 땅에서 하급 관리를 지내다가, 학문과 철학에 정진하여 대성을 이루었다. 훗날 초나라의 위왕(威王)이 재상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전원에서 자유롭게 사는 길을 택하였다. 세상을 향해 한 점 질척거리지 않고 맘 가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살다 간 호방한 인물이었다. 장자는 스스로 삶의 모습으로 세상에 사상을 전했다. 그에게 인생이란 자기만족과 자기 인식의 문제였다.

아득하게 먼 북쪽, 명부(冥府,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영혼의 세계)의 바다에 곤()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있었다. 녀석은 몸길이가 몇천 리쯤 되는지 그 끝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물고기였다. 이 물고기가 천년을 지나 붕()이라는 거대한 새가 되어 날갯짓하면, 마치 온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뒤덮이는 것만 같다. 붕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순간부터 온갖 춘정의 먼지가 흩날려 땅 위에 사는 모든 암수 동물의 호흡을 턱턱 가로막는다. ()이 비록 한 마리의 물고기로 태어났지만, 마침내 우화 탈피의 변형을 감행하여 훨훨 하늘을 나는 붕새가 된 것이다. 그가 넓은 북명 바다에 거대한 몸체를 담그고 흥청거리고 살았다면, 결코 오늘 천하를 굽어보는 대붕(大鵬)이 될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곤은 끝내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했을 것이다. 웅지의 초장왕은 대붕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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