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14화. 두 자매를 함께 취하다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08-19 08: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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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머문 중이, 천하를 향한 운명이 다시 움직이다
쌍미의 입궁, 제강의 결단… 난세는 다시 영웅을 길 위로 내몰다

 

 

 

 

송양공의 복수에서 벗어난 정문공은 초성왕을 환영하는 위로연을 열었다. 아름다운 춤과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전통적으로 정()나라의 악기들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넓고 두꺼운 석판과 동판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울어댄다. 장중한 선율 위로 여덟 명의 무희가 구름 위를 일렁이듯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곡예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나긋나긋한 몸을 배배 휘감기도 하고 옆으로 살짝 기울여 넘어질 것 같은 포즈를 취한다든지,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원래 정나라의 음악은 음탕하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방탕한 노래를 정성(鄭聲, 정나라 노래)이라고도 불렀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던 공자는 논어에서 정나라 노래에 대해 비판했다.

나는 정성(鄭聲)이 아악(雅樂)을 어지럽힐까 경계한다.”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꾀는 음악 탓이었을까? 이날도 사고가 생겼다. 정문공의 부인 문미(文羋)는 초성왕의 이복누이이다. 전통적으로 초나라 왕실의 남자는 웅()씨를 쓰고 여자는 미()씨를 썼기에, ‘정문공의 부인 미씨라는 뜻에서 문미라고 불렀다. 그 문미의 소생인 두 딸이 백미(伯羋)와 숙미(叔羋)로서 채 스물이 되지 않았다. 문미는 친정 오라버니에게 두 딸을 데리고 나와 인사를 드렸다.

신선한 처녀의 젊음은, 진중이라서 더욱 빛났다. 그녀들을 감싸고 여인의 향기가 솔솔 풍겼다. 왕은 이미 반 너머 넋이 빠져 두 자매를 이리저리 견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멀지 않는 숲에서 여우가 두 번 울었다.

정문공은 딸들에게 번갈아 술을 권하게 하였다. 왕은 오늘 술자리를 서두르고 있었다. 큰 술잔으로 바꿔 연거퍼 서너 잔을 마시더니 금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과인은 오랜만에 대취하였다. 누이와 질녀는 나를 전송하라.”

이래서 문미와 두 딸은 초나라 군영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왕은 문미를 별도의 막사에 쉬게 하고 두 처녀는 본인의 군막으로 들게 하였다. 그런데 시종이 자리를 펴는 도중에 그만 깜빡 잠이 들어 버렸다. 백미와 숙미는 발가벗긴 채 양털 이불을 돌돌 말고 앉아서 밤을 새웠다. 초나라 왕실의 법도가 원래 그랬다. 시침하는 여인은 왕의 수고를 덜고 동시에 흉기를 예방하기 위하여 옷을 홀딱 벗고 침전에 들기 마련이었다.

동녘이 부옇게 밝아오는데, 갈증이 난 왕이 문득 눈을 떠보니 곁에 하얗고 매끈한 알몸의 처녀가 둘이나 있었다. 얼핏 본인의 궁궐이려니 하다가, 다시 생각하니 지난 밤 대취하였던 연회가 생각났다. 저도 모르게 빙긋이 웃으면서 시위를 불렀다.

벌써 해가 솟았느냐? 한 식경만 더 있다가 날이 새도록 하라.”

잠시 후 군막은 겹겹이 장막이 덧씌워져 다시 어둑한 밤으로 변했다. 초나라 왕실에서는 낮에는 교접을 삼가는 법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군막은 도로 밤이 된 것같이 어두웠다. 발소리를 죽인 인기척이 사라지자 왕은 촉촉하게 젖은 쪽부터 두 처녀를 차례로 취하였다. 밤새 두근거리며 날밤을 새운 처녀의 들숨에서는 복숭아 냄새가 진하게 묻어났다. 잠시 후 만족한 왕은 조금 전까지 본인이 치대던 하얀 나신들을 굽어보며 말했다.

너희는 이제부터 둘이 함께 과인을 모셔라.”

문미는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하였다. 그날 오후에서야 왕을 만날 수 있었다.

대왕이시여! 신의 두 딸이 어젯밤부터 간 곳이 없습니다. 신의 딸들을 찾아주십시오!”

왕은 차갑고 근엄한 절대군주로 돌아가 있었다.

정나라 부인의 딸들은 과인이 잘 돌보고 있다. 부인은 염려 말고 임금을 도와 나라를 잘 다스려라.”

사직을 보전해주는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나라는 오늘날 정주에서 허창 사이에 있었다. 황하 문명과 장강 세력이 마주치는 길목에 낀 정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왕실의 울타리 역할이면서, 초나라가 북진하는 길목에 있어 맨 먼저 표적이 되는 운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왕실의 문화 중에서 퇴폐적인 영향을 주로 받았다. 오죽했으면 음탕한 노래를 정성(鄭聲)이라고 할 정도였을까! 군대가 강했을 리 없다.

어머니 문미는 몰랐을지라도 정문공이 두 딸을 바치고 나라의 안정을 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본래 초와 정은 그렇게 밀접한 관계는 아니었다. 인접한 위성국 정도였다가, 이날을 기점으로 주군으로 모시는 군신 관계로 변했다.

 

▲AI 생성 이미지

 

왕은 질녀 둘을 본국으로 데려가서 후궁으로 삼았다. 그에게 이번 전쟁의 전리품은 백미와 숙미였다. 자매는 한 채의 전각을 같이 쓰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쌍미(雙羋)라고 부르고 전각을 쌍미전(雙羋殿)이라고 불렀다.

초와 송이 한바탕 세력을 다투고, 초성왕이 쌍미를 희롱하고 있을 때도 중이는 제강(齊姜)에게 빠져 있었다. 제강이란 여인의 이름이 몇 번이나 등장하는 것은 여자는 이름이 없던 시절이라 강씨 성을 쓰는 제나라 공실의 여인이란 뜻이다.

제강은 희고 곧게 뻗은 미류나무를 연상케 하는 미모에 밝은 목소리를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나이 든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나지막한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중이는 젊고 발랄한 제강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도 나이가 들면서 외모가 변했다. 미끈한 숫말 같던 몸매가 나잇살이 오르면서 아랫배가 넉넉해졌다. 어느덧 예순이 넘은 그는 정말 이대로 안락한 삶을 살고 싶었다.

 

벌써 술에 취하고 기취이주 (旣醉以酒)

이미 덕에 마음이 여유롭다 기포이덕 (旣飽以德)

군자가 천년만년 군자만년 (君子萬年)

큰 복 누리기를 빌다 개이경복 (介爾景福)

 

공자의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 이미 취하고)’

 

그러나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하나같이 강주성에 터전을 두고 있는 명문의 자제로 야심가들이다. 기다림의 세월만치 희망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제나라까지 온 것은 언젠가 우리 공자가 대권을 잡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제환공은 죽고 나라의 형편도 기울었으니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겠다.’

그러나 그들은 중이와 진지한 말을 나누기도 어려웠다. 중이는 날마다 제강이나 잉첩들과 어울려 술과 음악 속에 살았다. 마음먹고 찾아가면 함께 술이나 마시자고 말꼬리를 돌릴 뿐이었다. 그날도 조쇠가 말을 꺼내려는데 중이가 막았다. 그의 말투에는 숨길 수 없이 권태와 짜증이 배어 있었다.

한잔들 걸쳤으면 그만하고 물러들 가시게. 나라고 마냥 신관 편한 줄 아시나? 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네.”

돌아오는 길섶에 뽕밭이 있었다. 고랑 사이로 옥수수 그늘이 짙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숫대에 등을 기대고 까치 다리로 쭈그려 앉았다. 끼룩끼룩, 어디선가 기러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높이 나는 새들이라 우는 소리가 청명하고 울림이 크다. 솜털 같은 구름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하늘 구석에 기러기 한 무리가 줄을 지어 날고 있었다. 왠지 고향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조쇠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우리가 주군을 따른 지도 어언 17년이다. 공자님은 환갑이 다 된 마당에 술과 여자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속절없는 세월은 돌릴 수 없고, 사람만 늙었구나. 장차 우리는 어찌해야 할꼬?”

황혼이 드리울 때라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언덕에 걸쳤다. 덩치 큰 위주조차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혀를 차는데, 그 얼굴에 석양빛과 눈물이 번들거린다.

차라리 공자를 유인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칩시다!”

유인이라니? 공자님을 속이자는 말인가?”

그야, 초심을 찾으시라는 의미!”

허기는, 어느 나라가 좋겠소?”

()이 어떻겠소? 사실 이 몸은 송의 공손고와 친분이 있소이다. 괄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수양성으로 가봅시다.”

그들이 작당하는 모습을 마침 뽕 따러 왔던 제강의 여종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종들은 주인 제강에게 이를 일러바쳤다. 중이는 아내를 안심시키려 다독인다.

사람이 산다는 게 무엇이겠소? 나도 이젠 늙었소. 나는 결코 당신을 두고 혼자 떠나지 않으리라. 맹세코 떠나지 않겠소!”

공자님은 진정으로 떠나기 싫어하십니까? 아니면 첩의 마음을 떠보려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비위가 상한 중이는 술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누가 누구를 떠본다는 말인가? 나는 떠나지 않는다니까!.”

떠나야 한다는 것은 의지이며, 가기 싫다는 것은 정입니다. 이 술은 전송의 자리였지만 이제는 못 가시게 막는 술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소첩도 함께 밤을 새워 마실까 합니다.”

제강이 곱게 웃으며 자신이 먼저 술을 한 모금 들고, 연신 남편에게 술을 권했다. 결국 중이가 곯아떨어지자 그녀는 호언을 불러 주인을 모시고 달아나라 일렀다. 남편을 이불 채 돌돌 말아 수레에 싣고 떠나는 가신들에게 제강은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

공자님을 잘 모셔주세요. 그리고 감히 바라건대 훗날 좋은 시절이 오면 저를 잊지 않도록, 호걸들이 꼭 챙겨주세요.”

제강의 그렁그렁한 눈에서 눈물방울이 주르르 흘렀다. 한 시진이나 지났을까, 달리는 수레 위에서 잠을 깬 중이가 펄펄 뛰면서 화를 냈지만 이미 수레는 제나라 국경을 한참이나 넘었다. 그래도 이번 여정은 비참할 정도는 아니었다. 제환공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는 이력이 중이의 명성을 높였다.

스무날이나 지나 일행은 수양성에 입성하였다. 송양공은 홍수 싸움에 다친 상처가 곪아가고 있음에도 중이 일행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 세상이 아직은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위안으로 삼았다. 일행이 묵는 객잔으로 공손고가 찾아왔다.

원하신다면 언제까지나 수양성에 계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도와드릴 형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다른 나라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손고는 수레 10여 대에 예비 바퀴까지 딸려서 중이의 장래를 빌어주었다. 장거리 여행자에게 이런 배려 깊은 호의는 실로 고마운 일이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나 체면과 위신에 살던 송양공은 상처가 덧나서 죽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 상처 곪는 파상풍은 치명적인 불치병이다. 그는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세자를 불렀다.

아비는 외곬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너는 세상의 평판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사직과 백성을 생각하라. 중이 공자가 오랜 기간 열국을 떠돌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그가 망명하자 진()이 편할 날이 없음은, 하늘의 뜻이 중이에게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언젠가 그의 날이 올 것이다. 진은 큰 나라이니 친분을 두텁게 하여 사직을 보전하라.”

송양공은 찬찬히 아들을 바라보았다. 젊은이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찍 성장한다. 아버지의 좌절을 보면서 아들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다만 결기가 모자란 게 마음에 걸린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마디를 남겼다.

아들아! 부디 신체를 강건히 하고 호연지기를 키워라.”

막상 세상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니 이제야 인생의 목적과 가치가 선명하게 보였다. 놀이에 빠진 아이가 해가 지고서야 돌아갈 집을 생각하는 것처럼, 온종일 바닥에 땅따먹기하던 기억은 그야말로 쓰린 아픔으로 남았다.

모든 인간의 삶이 죽음으로 완성되듯이, 이상주의자 송양공도 오늘 죽음을 맞아 인격의 완성을 이루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오늘까지 세상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되었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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