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15화 귀국의 발판을 다지다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08-22 0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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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에서 맺은 인연, 진(秦)의 초청으로 되찾은 귀국의 길
사냥터에서 맺은 약속, 혼인으로 이어진 진(秦)과의 동맹

 

 

 

중이 일행은 달포 만에 초나라 영도성(郢都城)에 도착했다. 어쩌다 송양공이 선물한 말을 타고 원수의 나라로 찾아간 셈이다. 초성왕도 중이의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다.
“진(晋)의 공자가 제와 송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들은 천하의 패권을 노리는 나라들이다. 그런 나라를 떠나 내게로 온다는 것은 그만큼 천하가 우리를 두려워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따뜻하게 맞이하라.”
이때 초는 양자강 유역 삼천 리 땅을 확보한 대국으로서, 중원 제패의 야망을 키워가고 있었다. 어쨌든 중이를 돕는 것은 명분으로 보나 실리로 보나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많은 일이다. 초성왕은 원래 마구잡이 성격인데도 변함없이 중이를 존경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중이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다. 중이는 때와 장소를 가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절제된 단정함과 자긍심을 지녔다.
어느 날 왕은 중이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 왕의 활 솜씨는 과연 대단하였다. 쏘는 족족 사슴과 토끼를 맞혔다. 이때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족히 130관은 나갈 수컷이다. 사냥개들이 그를 에워싸고 얼러대고 있었다. 왕이 싱긋 웃더니 손에 든 활을 중이에게 넘겼다. 기개와 실력을 보이라는 뜻이다. 중이는 화살을 매기면서 천지신명께 빌었다.
“이 몸이 고국에 돌아가 임금이 될 수 있다면 저 짐승의 급소를 맞히게 해주십시오!”
이제 중이의 운명은 하늘의 대답에 달렸다. 시위에서 벗어난 화살은 유성처럼 날아가 돼지의 가슴팍을 맞혔다. 그러나 급소를 맞은 건 분명하지만 한 대의 화살로 맹수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짐승은 방향을 돌려 중이를 보고 덤벼들었다. 휘어진 어금니에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 넓은 등판대기에 듬성듬성 잔디가 자랄 만치 대단한 놈이다. 괴물의 공격에 몰이꾼들이 분분히 흩어졌다.
이때 위사가 주인 중이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더니 덥석 돼지의 목을 끌어안고 조르기 시작한다. 거구들의 싸움에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뒤이어 조쇠와 선진이 달려들어 겨우 짐승을 찔러 죽였다. 과연 위사는 엄청난 역사였다.
그날 뒤풀이 연회에서 왕이 물었다.
“만약 공자께서 군위에 오르시면 무엇으로 과인에게 보답하시겠소?”
일찍이 진혜공 이오(夷吾)가 진(秦)에 땅을 주겠다고 약속한 이야기는 이미 중원 천지에 파다했다.
“여인과 보물이야 차고 넘치실 것이고, 진귀한 동물과 소붕(小鵬)의 깃털은 원래 초의 특산품이니 우선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게 있는지요?”
소붕이란 공작새를 말한다. 사람들은 전설의 대붕에 견주어 공작새를 소붕이라 부르고, 그 깃털로 관(冠)을 장식하는 것을 최고의 사치로 여겼다.
“굳이 무엇을 원하기보다 공자가 보답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씀해보시오!”
왕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이 몸이 군주가 된다면 대왕과 친선하여 천하가 태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대왕의 군사와 마주치게 된다면 삼사(三舍)의 거리를 양보하겠습니다.”
군사가 행군할 때 30리마다 한 번씩 쉬게 하였는데 이를 일사(一舍)라고 하였다. 삼사라면 90리, 오늘날 도량형으로 치면 36km이니 적지 않은 거리이다. 다만 더부살이하는 백수 공자의 신세로서 말뿐인 공수표의 약속이다. 둘은 한바탕 크게 웃고 그날의 잔치를 파했다. 다음날 초나라 장수 자옥(子玉)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진의 공자에게 너무 잘해주십니다. 기댈 곳 없이 떠도는 주제에 삼사를 물리니 마니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작자입니다. 중이를 죽여버리소서.”
“중이는 진중한 천성이라 헛말이라도 땅을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장차 그가 뜻을 이루고 말고는 하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내 어찌 그를 해코지하겠는가!”
실제 나이로는 오히려 중이가 초성왕보다 몇 살이 더 많았다. 둘은 서로에게 어떤 우정을 느끼고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는 이들의 관계를 이처럼 기록하였다.
“초성왕이 중이를 대하기를 적제후(適諸侯)의 예로써 대했다.”
같은 제후의 신분으로 예우를 다했다는 말이다.


▲AI 생성 이미


한편 진(晉)에서는 진혜공, 이오(夷吾)가 마침내 죽었다. 재위 14년, 나이는 59세였다. 일찍이 하서 땅 문제로 진(秦)과 전쟁을 벌이다 수모를 당하고, 그 패배감에 짓눌려 살았다. 스스로 자격지심이 있어 불쑥불쑥 남을 의심하고, 변덕 부리기가 죽 끓듯 하였다. 밥 먹듯이 대신을 죽였으며 편을 갈라 나라가 편할 날이 없었다.
공자의 역사서 《춘추》는 그를 이렇게 기술하였다.
“귀가 얇고, 심지가 곧지 못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렸다. 허영심이 많고, 하찮은 일에도 신의를 팽개쳤다. 사람 죽이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 성격은 우유부단했다.”
그의 삶에는 단 하나의 의미밖에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하여, 내키는 대로 휘두르는 것이다. 항상 중이의 존재가 목에 걸린 가시 같았던 그는 이복형을 경계하는 유언을 남겼다. 고명대신은 신임하던 여이생과 극예였다.
“세자를 잘 보필하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중이는 나라 안에 들이지 마라.”
세자 어(御)가 군위에 올라 진회공(晉懷公)이 되었다. 그는 원래 진(秦)의 옹주성에서 인질로 잡혀 있었다. 아니, 인질이라기보다 진목공(秦穆公)의 사위였다. 구금되었던 이오(夷吾)를 돌려보내는 대신 세자를 인질로 잡았던 진목공은, 그를 딸 희영(憘映)과 결혼시켰다. 세자는 아비가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고 몰래 도망쳐서 군위를 이어받았다.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앞으로 양(梁)의 부흥 운동을 적극 돕겠다는 천명이었다. 진(秦)은 지난해에 이웃 양나라를 병합하였는데, 양을 지원한다는 것은 대놓고 적대심을 표출하는 행위이다.
황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간다. 태곳적부터 범람을 거듭한 황하의 물결은 서쪽의 구릉지를 깎았고, 대신 동쪽 강변은 편평한 사질토의 들판이 되었다. 상류는 물 흐르는 소리가 가파른데, 평지의 물은 낮은 소리로 넓게 수런거린다. 그 평지에 자리한 나라가 양나라이다. 유목의 나라 진(秦)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일찍이 용문(龍門)의 전투 때 진(秦)이 양백에게 여인과 보물을 진상한 적이 있었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 라이벌을 제압한 마당이라 거리낌 없이 양나라를 병합하였다. 그런데 양(梁)도 나름 전통이 깊은지라, 고량(高梁) 땅을 근거로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고량 땅은 수수 농사를 전문으로 하고, 물이 좋아 예로부터 중국을 대표하는 술, 고량주(高粱酒, 수수로 빚은 곡주)의 생산지이다. 이런 참에 진(晉)의 새로운 군주가 양나라 부흥운동을 지원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도발이다. 진목공은 분노하고 있었다.
“기왕에 이리된 마당에 중이라도 데려와야겠다. 건숙 대부는 지금 당장 초나라로 달려가 중이 공자를 모셔 오라.”
진(秦)에서 자신을 초빙하는 사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중이가 초성왕을 찾았다.
“대왕! 이 망명객은 모든 걸 대왕께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객기를 부리던 청운의 공자는 나름 세월의 때가 묻어, 은근한 표현이 듣기에 좋았다. 왕이 연신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우리 초(楚)는 공자의 나라와 멀어 도움 주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마침 이웃에서 초청한다니, 두말 말고 가서 뜻을 이루세요. 과인은 약간의 노자를 준비하는 것으로 성의를 다하겠습니다.”
이후 진(秦)에서는 작은 논란이 있었다. 진목공이 딸 희영과 중이를 혼인시키려는 것이다. 희영은 세자 어(御)에 시집갔던 몸이니 중이로서는 조카며느리, 즉 질부가 된다. 원래 진목공은 뜻하는 바가 있어 세자와 딸을 결혼시켰는데, 차라리 이 기회에 중이와 결혼시키자는 계산이다. 그러나 희영의 입장에서는, 신랑감은 전남편의 백부였고, 아버지보다 두 살이나 많았다. 진목공이 딸을 달랜다.
“아비가 미안하구나. 그런데 천하의 영웅을 배필로 얻는 마당에 어찌 나이가 많고 적음을 따지겠느냐? 하늘의 뜻이 중이에게 있어 그가 장차 진(晉)의 군주가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정실부인이 되고, 너로 인하여 양국은 대대로 친인척이 된다.”
희영이 내리 사흘을 고민하다 겨우 결심하였다. 그 시각 신랑감도 난감해하고 있었다.
“내 나이 예순셋, 신부는 한창 꽃다운 나이 스물셋이란다. 그보다 따지고 보면 조카며느리가 되는데 어떻게 결혼을 한단 말인가?”
이쪽은 조쇠가 나섰다.
“모처럼 권하는 혼사를 마다하고 어떻게 동맹을 맺으려고 하십니까? 우리 쪽에서 무슨 인질이라도 내놓아야 할 판인데 스스로 딸을 주겠다는데 무엇을 더 망설이십니까? 이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하면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한때, 중이가 망설이다가 결국에 임금 자리를 놓친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마침내 마음을 돌려 희영을 아내로 맞았다. 사실 희영의 자태는 임치에 두고 온 제강보다도 아름다웠다. 눈빛은 반짝이고 사리 분별과 처신까지 똑발랐다. 중이도 신부를 한번 보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남녀의 정분을 쌓아갔다. 아무래도 하늘은 편애가 심하다. 장차 진문공(晉文公)이 되어 중원 천하를 호령할 중이는 유랑 생활 중에도 온갖 미인과 호사를 다 누린다. 이런 중이의 방랑 스토리는 워낙에 다이나믹한 데다 그 결말조차 극적이라서 오늘까지 중국 경극(京劇)의 소재가 되고 있다.

한편, 강주에서는 새로 즉위한 임금이 중이가 이웃 나라 진(秦)까지 왔다는 소문을 듣고 곧바로 중이를 따르는 호언과 호숙의 아비 호돌의 목부터 베었다. 호돌은 오히려 임금에게 대들었다.
“선왕이 신의가 없고 표리부동하더니 그 자식 또한 무도하구나! 어디 이 늙은이를 죽일 테면 죽여보시오!”
나이 팔십이 넘어 앞니가 다 빠진 탓에 침방울까지 튀겼다.
“이빨 빠진 늙은이가 귀까지 먹었구나! 어명을 듣지 못하는 저것의 귀를 꿰뚫어 기시(棄市)에 처하라.”
기시란 본보기로 시신을 저잣거리에 내걸어 구경시키는 형벌이다. 호돌은 오히려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살 만큼 살았다. 늙은 목숨 자식을 위해 내놓게 되었구나. 그나저나 이런 게 효과가 있을지?”
사람들은 굵은 화살에 귀를 꿰인 채 장바닥에 내걸린, 대신의 목을 보고 아연해서 탄식하였다.
“쯔쯧, 즉위하자마자 객기를 못 참고 대신을 저 모양으로 죽이는구나. 장차 나라가 순탄치 못하겠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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