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7화: 일광천하(一光天下)의 외교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07-25 09: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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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보다 명분, 전쟁보다 외교… 관중이 천하를 움직인 첫 번째 회맹
무력보다 질서를 앞세우다, 제환공 패업의 서막이 오르다

 

 

관중이 재상이 된 지 6, 제나라의 국력은 하루가 다르게 뻗어나갔다. 관중의 경제 정책은 한마디로 부국부민(富國富民)으로 요약된다. 관중 이전의 정치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향했기에, 치국의 이념에 백성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그런데 관중은 백성을 부유하게 해야 나라가 부유해진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다. 제나라 임치가 중심 도시로 발전하면서 통상이 활발해졌다. 임치는 기후가 온난하여 작황도 좋을뿐더러 동해 바닷가와 내륙을 잇는 동서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순식간에 상주인구가 십만에 육박하는 거대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관중의 정치는 철저하게 계급 사회에 근본을 두고 있다. 그가 일관되게 수행한 대민 정책은 세 가지였다.

첫째,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

둘째, 백성이 거주지를 옮기지 못하도록 하라.”

셋째, 하층민이 문자를 모르도록 하라.”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철저하게 단절하는, 이른바 우민 정치(愚民政治)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비민주적인 사고이지만, 사실 공선생, 공자도 백성은 다스림을 당하는대상으로 생각했다. 백성은 스스로 깨닫는 주체가 아니므로 관용과 엄격함을 적절하게 운용하여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만 지도자의 정책이 효과적으로 먹혀든다.

세계 최초의 화폐인 명도전(明刀錢)도 이때 등장하게 되었다. 칼처럼 생긴 청동제 화폐로서 밝을 명()자 비슷한 문양이 있어 명도전으로 불리는데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북한 지역에서도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동북아시아의 기축 통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임치의 저잣거리에는 볼일이 있는 자들만이 모이는 것도 아니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중원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였다. 그들은 종종 폭력과 절도 등을 일삼았고, 그런 만치 도시는 생기에 차 있었다. 까르르, 까르르... 여인의 웃음소리가 골목 밖까지 흘러나온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환락과 여인의 웃음소리, 그것 또한 번영의 증거이다. 임치는 이제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유행에 따라 변신하는 국제적인 패션 도시가 되었다.

재위 6년 차 새해 첫날, 조회의 자리에는 관중 이하 대부들이 모두 모였다. 제환공이 이렇듯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불러 모은 것은, 근래 드문 일이다. 드디어 중원 제패의 굴기를 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군주는 일단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과인은 그동안 국정을 쇄신하고 힘을 길러왔다. 이제 식량은 충분하고 군사는 힘이 넘치고 있다. 바야흐로 패권을 잡아 우리 제나라가 천하를 도모할 때다. 이런 관점에서 대부들의 기탄없는 의견을 듣고자 한다.”

임금이 모임의 서두를 시작하였다. 그는 평소 말이 짧다. 이만치라도 서두를 떼는 것은 오늘의 자리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곧이어 재상 관중이 대답을 올린다.

중원의 열국 중에는 우리 제()와 견줄 만한 나라가 많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패권을 잡아야겠다는 욕심에 들떠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천하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군주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 같았지만, 그의 눈길은 문무 관원들을 향하고 있다. 관중은 자신이 던진 물음에 자신의 대답을 이어간다.

천하는 명분이 있는 자가 다스리는 법이며 그 명분은 왕실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관()은 아무리 낡아도 반드시 머리에 쓰고, 신은 아무리 새것이라도 반드시 발에 신어야 한다는 이치입니다.” 관중은 여전히 침착했고, 대부들은 불편한 심정이었다. ‘말은 잘하네. 명분이라? 우선 듣기에는 그럴듯하구나!’ 임금이 이들을 대변하듯 질문을 던졌다.

잠시만, 재상! 그렇다면 그 명분이란 어떤 것인가?”

제환공은 복잡한 가운데서 요점을 정확히 가려내는 능력을 타고났다. 그는 구구한 설명이나 죽간에 쓴 글 나부랭이를 싫어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시켜보고, 거짓말을 가려내고, 감추려고 하는 비밀의 베일을 벗기는 그런 일에 흥미를 느낀다.

그것은 질서입니다. 위로는 천승의 제후로부터, 아래로는 나무꾼이나 어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위계의 질서가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에 충실해야 비로소 천하에 질서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관중이 저술한 관자(管子)라는 서책에는 이러한 그의 사상이 한마디로 표현되었다. “천하의 법도로 천하를 다스린다(以天下爲天下, 이천하위천하).” 오늘날의 말로 하면, 바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다.

이때 그예 참지 못한 동곽아가 끼어들었다. 토착 대부들 가운데서 대표 격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오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왕실? 명분? 같잖아서말은 잘하는구나! 나 동곽 아무개는 어린애가 아니야!’ 아까부터 관중이 복잡하게 말을 돌리는 게 짜증이 났지만, 자리가 자리니만큼 그나마 참아왔던 참이라 눈꼬리부터 치켜떴다. “어허희한한 말씀을 하시는군. 말은 쉽겠지. 하지만 명분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힘이 있어야.”

그의 말은 그다지 큰 소리가 아니었는데도 또렷하게 잘 들렸다. 사람들이 재상의 얼굴과 동곽아 쪽을 한 번씩 쳐다보고 있었다. 임금은 논쟁에 끼어들기를 삼가고 있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고, 자신의 주장 세우는 일을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그의 천성이다. 지금도 잠시 천장을 응시하다가 동곽아의 의견을 물었다.

 

▲AI 생성 이미지

 

과연, 과연, 동곽 대부! 그러는 대부는 어떤 책략이 있는가? 어디 한번 이 자리에서 말해보라!”

국가 간에 우열은 모두가 병력의 힘으로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 제()가 번성할 길은 군마를 키우고 조련시켜, 주변의 소국부터 병합해나가는 전략을 쓰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고금을 통틀어 엄연한 천하 제패의 방편입니다.”

관중의 눈이 번쩍 빛났다. 어차피 한 번은 부딪혀야 할 마찰이요, 거쳐야 할 논쟁이다.

전쟁은 능사가 아닙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우선이고, 만약에 꼭 필요하다면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동곽아의 짙은 눈썹이 꿈틀대더니, 아예 고개까지 홱 돌려버린다. 아무리 벼슬이 재상이라지만 관중은 이제 막 부상하는 신흥 세력이다. 유서 깊은 가문의 대주인 동곽아를 상대로 이처럼 단정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무례하다 할 수 있다. 동곽아는 입술을 물었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 현실에서 그게 정말 가당키나 한 일인가? 줄타기하듯이 곡예라도 벌이자는 말인가?”

동곽아의 투정 같은 불평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임금은 관중의 책략에 마음이 가 있었다.

재상! 그런데 이기는 싸움이란 어떤 싸움을 말함인가?”

전쟁의 승패는 세 가지에 달렸습니다. 바로 군사력과 명분과 지리적 조건입니다. 이 셋을 다 갖춘 상태일 때 싸우는 것이 비로소 이기는 싸움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기는 싸움입니다.”

 

빠르기가 바람 같고 기질여풍 (基疾如風)

조용하기가 숲속 같고 기서여림 (基徐如林)

치고 빼기가 불같으며 침략여화 (侵掠如火)

움직이지 않기는 산과 같다 부동여산 (不動如山)

 

손무의 손자병법

 

이는 손자병법의 한 구절로서, 동양에서 이천 년이 넘도록 군사를 움직이는 요체가 되었다. 그런데 관중의 시대는 손자보다 200년이나 앞선 시절이니 열국지에 실린 이 말은 후세에 누군가 꿰맞춘 이야기가 분명하다.

임금의 눈길은 계속 관중에게 있었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당장 어떤 식으로 천하에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겠는가?”

지금 송나라 임금이 즉위한 지 몇 년이 되었으나 아직 왕실의 책봉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자께 이런 점을 아뢰고 송나라 군주의 책봉식을 우리 제()가 주관하여 회맹을 여신다면?”

임금은 대부들에게 눈을 돌려 의견을 구하는 자세를 보였다. 아무도 대놓고 반대는 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선뜻 찬성을 표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은연중에 동곽아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이때 누군가가 외치듯이 말했다. “재상의 방책에 찬성합니다!”

관중을 편들고 나선 이는 글줄이나 한다는 공손습붕이었다. 그는 관중의 추천으로 제례와 외교의 일을 맡고 있다. 슬쩍 임금이 거들고 나섰다. “동곽 대부! 그대는? 그대가 말해보라.”

지목받은 동곽아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대도 재상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우선은 어디 한번그 방법대로…….”

그런가? 허허, 그대의 기개가 훌륭하다. 대신에 그대는 군사를 조련하고 언제든지 출병할 수 있게 대기해야 할 것이야.”

! 존명이요.”

임금이 물꼬를 터준 동곽아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그제야 다른 대부들도 너도나도 외쳤다.

훌륭합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신도 찬성합니다.”

이날 조당의 자리에서 포숙아는 끝내 말을 아꼈다. 임금이 자신에게 눈짓을 줄 때도 차라리 외면하였다. 이런 자리에서 대놓고 관중을 두둔하면 재미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생각이 다른 무리 동물이라, 이런 과정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치인 것이다. 즉시 사신을 낙양으로 보내 주이왕(周梨王)께 조례하고 제환공의 의견을 전했다.

현실의 외교에서 다소 소외되어 있던 주이왕은 반갑게 수락하였다. 이런 절차 끝에 제환공은 천자의 이름으로서 송, , , , , , , () 8개 열국에 사신을 보내어 북행 땅에서 회동하기를 제창하였다. 이로부터 향후 굵직한 국제간 외교나 군사의 문제는 주로 국제회의 기구인 회맹의 자리에서 논의하게 되었으니, 이 북행 땅 회맹의 결행을 일러 공자는 논어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단속하고, 일거에 천하를 바로잡는 일광천하(一匡天下, 한차례 거사로써 천하를 바로 잡다)의 업적을 이루었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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