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생의 처형, 의혹 속에 희생양으로 지목
제양공과 문강의 관계, 민간의 조롱 대상

오류땅 야영지의 어둠이 짙어질 무렵에, 갑자기 말들이 이상해졌다. 멀쩡하던 말들이 하나같이 흥흥거리며 콧김을 쏘아대고 안절부절 흥분하였다. 암말들은 이리저리 쏘다니며 불안해했고 수말들은 앞다리를 쳐들어 허공을 긁으면서 울부짖었다. 그때는 누구도 이상한 기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말고삐를 잡으려고만 애썼다.
캄캄한 어둠 속 저편, 조릿대가 무성한 숲속에서 누군가가 진액을 질질 흘리는 발정 난 암말 수십 필을 매어놓고 수말들을 꾀어내고 있었다. 암컷의 진액 냄새에 미친 수말들은 말뚝에 묶인 끈을 끊어내려고 겅중겅중 날뛰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사람들이 질척한 말똥 위에서 고삐를 잡아채려 했지만, 사정없이 발굽에 차이고 휘두르는 꼬리에 맞았다. 결국 흘레가 급한 몇 마리 드센 놈들이 고삐를 끊고 뛰쳐나가 어둠 속으로 들입다 질주가 시작되었다. 원래 말이란 동물은 눈이 좋아 밤길을 달려도 어디에 부딪히는 법이 없다. 사실 이런 수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야생마를 잡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어미 말을 잡으려면 망아지를 묶어놓고, 수말은 암말로써 유혹하는 것이다.
졸지에 군영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때 노환공 앞으로 어딘가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 팽생이 다가왔다.
“혹시… 고뿔이라도 걸리신 게 아닙니까?”
임금은 군막 앞 평상 위에 있었다. 마침 불어온 샛바람에 기침을 하던 중이다. 왠지 팽생이 탐탁지 않던 터라 슬쩍 미간이 굳어졌다. 그러나 굳이 물리지는 않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허허! 그냥 잠시….”
어느 순간 팽생은 소매 속에 숨겼던 청동제 몽둥이를 슬그머니 꺼내 들더니, 그대로 노환공의 정수리를 가격하였다.
“으아아악….”
졸지에 임금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저런, 저런, 저놈의 말을 막아라! 군주님! 군주님!”
팽생이 입으로는 앞뒤 없는 소리를 질러대면서 손모가지를 뒤로 돌려 흉기를 숨기는데, 노환공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고국이 있는 서쪽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이 사건은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되었다. 군주가 남의 나라를 방문하던 중에 원인 모르게 죽었으니 따질 게 많았지만, 상대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제나라는 발해만을 접하는 사방 천 리의 제후국인 데다 농지는 비옥하고 소금 생산까지 활발한 경제 대국이다. 다짜고짜 행동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보니 설왕설래 말만 무성했다.
“팽생이란 놈이 망극하게도 쇠몽둥이로 임금을 시해하였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임치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모양이야. 미친 수말의 발굽에 채어 임금이 죽었다던데…?”
“쩝, 글쎄다! 말발굽에 챈 건 맞는 말인데… 누군가 꾸민 일이라는 말도 있어. 산융의 오랑캐들이 숲속에 발정 난 암말 수십 마리를 풀어 일을 꾸몄다고도 하던데…?”
“오류 땅 촌장도 한 패거리라지? 촌장부터 잡아 죽이고 마을을 폐가로 만들어야 한다!”
결정적인 목격자나 증거가 없다 보니 모든 게 추정이고 억측 이다. 공실 남매간 스캔들에다 노나라 임금의 변사까지…, 하나같이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밑도 끝도 없는 온갖 풍문이 돌았다. 그나마 확실한 것은 수말들이 발정 난 암말의 냄새에 그토록 난리를 피웠고, 결과적으로 노나라 임금이 말발굽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에 머리를 맞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말(馬)은 말(言)을 못 하고, 흘러간 시간을 다시 돌려볼 수 없다 보니 진실의 꼬투리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에는 노환공이 어떻게 죽었는지, 진실은 중요치 않게 여겨졌다. 사실을 규명한다고 이미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오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체면이 진실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 노나라 공실의 위신이 문제였다. 군주가 맞아 죽은 마당에 없던 일로 그냥 덮을 수는 없다. 반면에 제나라도 결정적인 책임을 인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양쪽 다 나라의 국격이 달린 일이었다. 결국에는 노환공을 잘못 안내한 죄를 물어 팽생의 목을 잘랐다. 한마디로 꼬리 자르기이자 희생양이었다. 그나마 노나라의 위신을 살려주고, 제나라의 입장까지 고려한 어정쩡한 조치로 군주 시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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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
노환공의 시신은 예법을 다하여 화려한 상여로 꾸며져 고국으로 돌아갔다. 노환공과 문강 사이에 태어난 세자가 군위를 계승하여 노장공이 되었다. 이때 나이 열다섯이었다.
문강은 귀국하면서도 첫사랑 오빠가 잊히지를 않았다. 친정 나들이 중 남편이 죽은 마당에 보란 듯이 돌아갈 염치도 없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수레는 노나라와 제나라의 경계인 작(禚) 땅에 이르러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다. 문강은 수려한 산세를 둘러보더니 시종을 불렀다.
“이곳은 노(魯)도, 제(齊)도, 어느 나라도 아니다. 접경에 살면서 언제든지 오고 갈 수 있을 것이야! 바로 내가 살 곳이다. 새 임금에게 가서 전해라. 이 미망인은 훗날 죽은 뒤에나 돌아가겠다.”
그 시절 백성들은 땅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땅에 금을 긋거나 경계를 막지는 않았다. 몇 해 전 제와 노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크게 다투었고, 그로써 작 땅은 완충지대로 남겨졌다. 문강은 아예 그 땅에 짐을 풀고 눌러앉았다. 노장공은 어머니가 면목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별궁 하나를 지어주었다.
제양공이 노환공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백성들은 그를 무도한 임금이라고 욕했다. 그런 비난과 소문 속에서 제양공은 예정대로 주 왕실 공주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역시 첫사랑 누이의 쫀득한 속살을 못 잊어 슬금슬금 작 땅에 드나들었다. 천자의 딸 왕희는 청정한 심성의 숙녀였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문강의 불륜을 알게 되었다.
“천륜을 모르는 인간이구나.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내 팔자가 기구해서 이리 돼먹지 않는 자에게 시집을 왔구나.”
남편을 대놓고 외면하고 마주하는 자리를 피했다. 제양공은 그런 아내가 부담스러워 그녀를 독살시켜버렸다. 그러고는 더욱 거리낌 없이 사흘이 멀다고 작 땅으로 나갔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며칠이고 질탕한 연회를 열면서, 양탄자를 깔아놓고 알몸으로 밤낮없이 그 짓을 해댔다. 종래는 공공연하게 궁궐로 문강을 불러들일 만치 사람들의 눈도 개의치 않았다. 세간에는 이런 노래까지 퍼졌다.
해진 통발 어살에 매어뒀더니 패구재량 (敝笱在梁)
방어와 환어가 들락거리네 기어방환 (其魚魴鰥)
제나라 공주 제나라로 가네 제자귀지 (齊子歸止)
따르는 시종들이 구름과 같네 기종여운 (其從如雲)
해진 통발 어살에 매어뒀더니 패구재량 (敝笱在梁)
방어와 연어가 들락거리네 기어방서 (其魚魴鱮)
제나라 공주 제나라로 가네 제자귀지 (齊子歸止)
따르는 시종이 강물과 같다네 기종여우 (其從如雨)
공자의 《시경》, 〈국풍〉 중 제풍(齊風)편, ‘패구(敝笱, 구멍 난 통발)’
‘통발’이란 대나무나 싸리를 엮어서 한번 들어간 물고기가 나오지 못하게 만든 고기잡이 도구이며, ‘어살’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개울이나 강에 둘러 꽂아놓은 울타리를 말한다.
국풍(國風)의 풍(風)이란 바람처럼 스쳐 가는 노래로 항간에 널리 유행하는 가요라는 뜻이고, 제풍이니 제나라에서 유행한 노래이다. 주로 남녀 간의 정과 이별을 다루고 있는 민간의 음악이다 보니 여인의 정조를 구멍 난 통발에 비유하고 있다. 문강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미모와 재원으로 꼽힌다. 그런 만치 야릇한 소문에다 그녀의 몸가짐을 조롱하는 노랫소리도 높았다.
제양공은 누이와의 불륜 문제 외에도 여러 실정을 저질렀다. 군주의 오락은 전쟁이라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다. 주(周)가 사직을 연 지 어언 35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중원은 동제서진(東齊西秦), 남초북진(南楚北晉)의 형세였다. 동방으로는 제나라가 융성하고 서방에는 진(秦)나라, 남쪽으로는 초나라가 강국이며 북쪽에는 진(晉)이 있었다. 이들 4대 강국 외에도 송, 정, 노, 위, 채, 진(陳) 등의 유력 제후국과 기타 소국들이 즐비하고, 변방에는 왕실로부터 작위조차 받지 못한 군장이 다스리기도 하였다. 시비하고 전쟁을 일으킬 상대는 차고 넘쳤다. 이도 모자라 위나라의 후계 문제와 관련한 전쟁을 일으켜 이를 도우러 왔던 왕실의 병사와 장수 여럿까지 죽였다. 제후국들끼리 싸우는 일이야 흔했지만, 그런대로 도덕적인 외피를 쓰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왕실의 군사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양공은 왕실조차 만만하게 생각했다. 천하 백성들이 한목소리로 거침없는 패륜과 실정을 욕했다. 풍문은 바람처럼 번지는데 정작 당사자는 개 풀 뜯는 소리쯤으로 여기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만하면 임금을 갈아치울 명분은 충분하지 않은가? 때마침 한발과 홍수까지 겹치자 민심은 날로 흉흉해지는데, 군주는 별반 개의치 않고 제 하고 싶은 주색잡기에 열을 올렸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편승해서 제양공을 시해하고 군주가 된 인물은 공손무지였다. 그는 제양공의 사촌 형제이자 억울하게 죽은 팽생의 형이다. 공손무지는 연칭, 관지보 등 불만 세력과 결탁해서 패구산 사냥터에서 군주를 시해하고 군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 세월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겨우 여섯 달 만에 옹름(雍廩), 동곽아(東郭牙) 등 기득권 세력에게 제거당하고, 이제 바야흐로 제나라는 권력의 공백기, 무주공산의 상태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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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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