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4화- 우정의 대명사가 된 관포지교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07-15 09: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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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의 화살을 넘어 패업의 동지가 되다
친구를 재상으로 세운 사람, 친구를 패자로 만든 사람
포숙아의 천거, 제환공의 시대를 열다

 

 

죽은 제양공에게는 공자 규()와 소백(小白)이라는 장성한 동생이 둘 있었다. 그들은 평소 이복형인 제양공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여동생 문강은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으나, 남자들은 경우가 달랐다. 둘은 형의 변덕을 두려워해서 각자 연고가 있는 나라로 몸을 피하고 있었다. 공자 규는 노나라 여인의 몸에서 났으니 외가인 노나라로 망명하고 공자 소백은 본인의 외가인 거()나라로 피신해 있었다. 그들의 참모가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공자 규를 모시는 사람은 관중이었으며 공자 소백에게는 포숙아가 있었다.

관중과 포숙아는 국인(國人)이기는 했으나 그리 높은 신분은 아니었다. ‘국인이란 성안에 사는 사람들로 정치 경제적 특권과 교육 문화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다. 성 밖에 사는 하층민은 민(), 혹은 야인이라고 하여 신분상 차등을 두었다. 대신 민은 전쟁에 동원되지 않았고 설사 동원된다고 해도 직접 전투보다는 보급품 수송 등 잡무를 맡아보았다.

둘은 한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친구였다. 글을 배웠으나 뒷배가 없어 벼슬길이 막힌 그들은 시장에서 생선 도매상을 하며 살았다. 이미 글을 알고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보는 눈이 있어 나름대로 시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어느날 관중이 포숙아에게 말하였다.

 

지금 임금은 성격이 괴퍅하여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있다. 이 정권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공자들을 따르면서 기회를 노리자.”

둘 중 하나가 성공하면 남은 사람을 추천해주기로, 약속하였다. 관중이 형인 공자 규를 선택하고, 포숙아는 동생 소백을 따랐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임금이 피살되고 임치는 주인을 잃었다. 멀지도 않은 그해 시월이었다.

거나라에 있던 동생 소백이 본국의 소식을 듣고 거후(居侯, 거나라 군주로서 후작의 벼슬이다)에게 군사를 요청하였다. 열국의 제후는 누구랄 것 없이 모반을 가장 두려워하는 동병상련의 입장이기에, 비상사태를 맞아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후는 선뜻 100승의 군사를 내주었다. 길도 가깝고 빨리 서둔 탓에 아무래도 형인 규보다 먼저 도달하게 생겼다. 갑옷 스치는 소리, 칼집이 부딪치는 소리, 말에 딸린 등자와 재갈이 흔들리는 소리떠들썩한 웃음소리와 함께 파죽지세로 말을 몰았다.

일행은 즉묵(卽墨) 땅 고갯마루에 도달하였다. 길은 좁고, 대낮인데도 사람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선두를 달리던 말들이 갑자기 무릎을 꺾고 무너졌다. 히이힝. 길바닥에 깔린 밤송이를 밟은 것이다. 말발굽에 붙이던 편자도 없던 시절이다. 앞선 수레가 주저앉고, 연이어 다른 말들이 부딪치고, 앞 뒤 병거가 들이받았다. 순식간에 뒤죽박죽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난장판이 되었다.

무슨 일이냐? 웬 밤송이가 이렇게도 많으냐? 모두 내려 밤송이를 치워라!”

그때 숲속에서 관중이 나타났다.

공자께서는 그간 무고하신지요?”

그는 미리 30승의 군사를 이끌고 고갯마루에서 소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가 밤송이를 깔았던가?”

그보다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본국에 환란이 생겼기에 귀국하는 길이다. 그걸 왜 묻느냐?”

우리 공자님이 장자이십니다. 당연히 이번 일은 큰 공자께서 해결하실 일입니다.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소백의 눈꼬리가 치솟았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포숙아의 친구라기에 그런가 했더니 참으로 몹쓸 위인이로구나. 썩 길을 비켜라!”

포숙아도 거들었다.

물러서라. 굳이 막겠다면 힘으로라도 뚫겠다.”

그 뒤에는 100승의 군사들이 도끼눈을 치켜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관중이 거느린 군사로서는 이를 당할 수가 없다.

정히 그러시다면.”

말을 하면서 슬며시 활을 집어 소백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무심코 수레 위에 앉아 있던 소백은 아앗!”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기겁한 포숙아가 달려왔다. 소백은 얼굴이 백지장 같은 데다 이미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이를 본 관중은 훌쩍 말에 올라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잠시 후 쓰러졌던 소백이 슬며시 깨어났다.

포숙아! 포숙아! 나는 괜찮다. 적은 물러갔느냐?”

화살은 마침 혁대 고리를 맞추었을 뿐이었다.

되었다! 내가 죽은 듯, 곡을 하고 수레에 눕혀라.”

그들은 다친 공자를 온량거(轀輬車, 상여 수레)에 눕혀 흰 천으로 위장하고 임치로 내달렸다. 이후 소백은 대부 동곽아와 습붕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소백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공자 규도 노장공에게 출병을 요청하였다. 노나라 군주도 아버지 노환공의 죽음에 대한 원한이 있어 이번 기회에 제나라를 어찌해볼 요량으로 300승의 대군을 이끌고 출전하게 되었다. 울긋불긋한 기치가 하늘을 가리고 창검은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면서 사기도 높았다. 그러나 그들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노군은 며칠 뒤 건시(乾時) 땅 싸움에서 크게 패했다. 터전을 지키려는 제나라 군사는 매복하여 노리고 있었고, 노군은 이웃나라를 지원하는 역할이라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다. 한차례 싸움에 여지없이 패퇴하였다.

퇴각하는 길조차 순탄치 못했다. 군사들이 홧김에 촌락을 약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터에서의 약탈과 살육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형편이 좋을 때는 약탈을 군령으로 금지했지만, 쫓기는 마당에 이도 저도 가릴 게 없이 무너진 군율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도주하는 군대의 한풀이는 먼저 재물의 약탈, 살육과 겁탈, 그리고 마지막은 방화의 순으로 잔인하게 진행되었다. 그들이 지나는 길목마다 비명으로 뒤덮였고, 사람 살 타는 노린내가 진동했다.

 

그렇게 떼강도로 변한 노군의 뒤를 제나라 동곽아의 군사가 무섭게 뒤쫓고 있었다. 그들이 드디어 노군의 본진을 급습한 것은 그달 초사흘이었다. 전날까지 노군의 약탈 현장을 보면서 치를 떨던 동곽아 군대의 손속은 야멸치게 매웠다. 노군은 서리 맞은 메뚜기 떼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사납고 날렵하던 기세는 흔적도 없이 오합지졸이 되어 있었다. 혼전 중에 공자 규도 살을 맞고 죽었다.

규의 외로운 시신은 댕강 목이 잘리어 나무 상자에 담기고 관중은 겹겹이 묶여 임치로 압송되었다. 이로써 제나라 공실의 불륜과 관련된 여러 사단이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죄인을 실은 함거가 진영으로 들어서자 포숙아는 친구를 일으켰다.

관중은 별 탈 없는 모양이니 참으로 기쁘다…….”

내 원래 공자 규를 모셨건만, 주인이 죽은 마당에 지난날을 변명하며 어찌 살겠나! 차라리 옛정을 생각하여 단칼에 죽여주시게.”

큰일을 하는 자는 작은 의리에 연연하지 않은 법, 새는 나무를 가려서 깃들이고 신하는 주인을 가려 섬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침 우리 주군의 뜻이 크고 인재를 소중히 여기시니 함께 천하 패업을 이루세. 친구여! 부디 우리의 약속대로 하세나.”

이후 공자 소백의 즉위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그가 바로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꼽히는 제환공(齊桓公)이다. 바야흐로 소백의 행운이 제환공의 역사를 만드는 순간이다.

 

▲ AI 생성 이미지
 

 

군주가 된 소백은 무엇보다 전 임금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시급하였다. 우선 필요한 것이 인적 쇄신이다. 환공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포숙아와 이 일을 의논한다. 아무래도 오롯이 자신을 받들 사람은 포숙아만 한 이가 없다.

포 대부! 재상을 맡아주시오. 과인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소.”

그런데 포숙아의 생각은 달랐다.

주군께서 백성을 위무하고 사직을 돌보시는 데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열려 하시면 소신으로서는 그릇이 모자랍니다. 차라리 신이 한 사람을 추천하겠나이다.”

그런 인재가 있단 말이오? 그게 누구란 말이오?”

실은, 지난날 공자 규를 모시던 관중입니다. 관중이야말로 부국강병의 이치와 정국을 보는 눈이 있는 데다 탄탄한 내공까지 있으니 임기응변으로 주군을 도와 패업을 이룰 자입니다.”

누구라고? 설마 짐에게 활을 쏜 그자를 말하는 것이요?”

다음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환공과 관중의 첫 대면을 각색한 것이다. 제환공이 물었다.

그대는 정치의 요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관중은 겸손하지도 않았다.

신은 부국강병의 이치에 대하여 어느 정도 터득하고 있사옵니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며, 결국 민생이 정치의 근본이라 할 것입니다. 이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입니다.”

관중은 또 말했다. “그런데 매사는 다 순서가 있는지라 지금 주군께서는 그보다 더 급한 일을 챙기셔야 합니다.”

잠시 말을 끊고, 슬쩍 임금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환공은 억양이 뚜렷한 관중의 말투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흐음그만한 이치는 과인도 짐작하고 있다. 그런데 급한 일이라니? 백성을 위무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무엇이더냐?”

우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입니다. 대부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들 각자에게 소임을 맡겨 임금께서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 것을 명백하게 하셔야 합니다. 현명한 군주는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고 여러 계층의 많은 이를 등용합니다. 정권의 주축이 될 대부들부터 우호 세력으로 다져야 합니다.”

, 글쎄다. 그건 그렇다 치고과인은 사면령을 공포하고 세금을 대폭 경감시켜 백성의 민심을 얻고자 한다. 이는 새 정권 출범을 경축하는 뜻도 있음이다. 관중의 생각은 어떤가?”

관중은 슬쩍 미소부터 보였다. 군주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선을 요리할 때 함부로 건들고 뒤적거리면 생선 살이 부서져 먹을 게 없게 됩니다. 사면령을 쓰게 되면 백성이 제도나 법령을 가벼이 보게 될 것이고, 특히 조세의 정책은, 내릴 때는 쉬우나 한번 내린 세금을 다시 올리려면 저항이 따르게 됩니다. 이는 여러 단계로 검토한 후에 실행할 사항입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제환공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듣다가 차츰 경청하는 자세로 바뀌더니, 막힌 머릿속이 뻥 뚫린 심정이 되었다. 이로부터 관중은 치국의 이치와 경제 부흥과 외교까지, 정권이 나아가야 할 향방에 대하여 종일토록 임금과 토론하였다. 중간에 한 번 옻칠 그릇에 담긴 국수가 나왔을 뿐 외인의 출입도 없었다.

이후 제환공은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인사에 있다. 관중은 동곽아, 습붕, 영월, 성보 등 젊은 대부들을 등용하여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였다. 자고로 개혁은 신진의 활력에서 나온다. 그들은 군사의 징발을 위하여 호적제를 최초로 시행하였고, 국가가 소금의 생산을 전담하는 전매 제도를 도입하여 내륙 국가들의 경제권을 거머쥐었다. 이런 개혁과 제도의 개편으로 제나라는 국력이 쭉쭉 뻗어 몇 년이 지나자 단숨에 수십만 호를 거느린 대국이 되었다. 제환공의 치세는 그대로 관중의 치세가 된다.

관중의 성공 뒤에는 친구 포숙아의 우정이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명이나 지위를 다투기 마련인데, 친구를 자신보다 윗자리에 오르게 한 포숙아의 도량과 식견은 과연 미담이라 할 것이다. 폭넓은 아량과 관용의 DNA 탓일까, 포숙아의 후손은 대대로 제나라의 명문 사대부 집안으로 명성을 떨쳤다.

관중 자신도 말하였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나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아이다.”

세상은 이들의 우정을 일러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하여 오늘까지 우정의 대명사로 삼았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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