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33화. 이무기와 해결사, 절실했던 만남

김백 기자 / 기사승인 : 2026-10-28 08: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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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를 향한 야망과 멸문지한의 복수…두 영웅이 마침내 손을 잡다
초나라의 비극에서 오나라의 권력투쟁까지…춘추시대 격변의 서막

 

 

BC 520년, 장강 하류에 위치한 강남(江南, 지금의 상하이)땅 일대에는 신생국 오(吳)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오는 최근 반세기 동안 강과 바다를 통한 수상 교역이 활발하면서 국세가 강성해졌다. 군주는 요(僚)왕이다. 요왕의 할아버지 수몽(壽夢) 군장은 제각기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강남을 통일하고 전제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 수몽은 그중 막내인 계찰(季札)을 장차 왕이 될 재목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계찰 본인이 형들을 두고 왕위를 받을 수 없다고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큰아들인 제번(諸樊)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대신 언제고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왕이 된 제번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 소(巢) 땅을 쳤다. 소는 오늘날의 소호(巢湖) 일대로서 전략적 요충이기에 오, 초 싸움의 주요 무대가 된다. 오나라 군대가 무섭게 달려들자 우신(宇新)이라는 장수가 계책을 냈다.

“오의 젊은 군주는 무모하다. 성문이 열리면 맨 먼저 달려올 것이다. 그때를 틈타서 우리가 쏘아 죽이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성문이 깨지자 대뜸 제번왕부터 말을 몰고 들이닥쳤다. 젊은 왕은 도대체가 위험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우신은 성가퀴 뒤에 숨었다가 왕을 향해 회심의 화살을 날렸다.

“아차…!”

왕은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리면서 고삐를 당기려다 움찔했다. 어느새 손이 감각을 잃고 있었다. 그는 후두부에 얼얼한 통증을 느끼면서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당황한 시위들이 소리쳤다. ‘대왕이 살을 맞았다!’ 왕은 지금이 마지막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말에서 떨어지다니 이런 추태가 어디에 있는가?

“멍청한 놈! 무슨 헛소리냐? 과인은 살을 피했다. 어서 내 말부터 끌어와라!”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깜짝 놀라 낯빛이 변했다. 갑자기 구토증이 치밀더니 무언가를 울컥 토했다. 비릿한 감촉이 아직 살아 있는 뺨에 느껴졌다. 화살은 그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그렇게 제번은 절명하였다. 숨어서 상대 군주를 쏘아죽이는 것은 명분을 중히 여기던 지금까지의 전쟁에서 못 보던 장면이다. 거의 암살에 가까웠다. 다음으로 왕이 된 인물은 둘째 여제(餘祭)왕이었다.

“형님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려고 일부러 죽은 것이다. 나도 어서 죽어 동생에게 왕위를 넘겨야겠다.”

여제왕은 정승 굴호용(屈狐庸)을 앞세워 서구(舒鳩) 땅을 두고 초나라와 대판 싸움을 벌였다. 굴호용은 바로 하희의 남자 굴무의 아들이다. 굴호용은 이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그런 뒤 여제왕도 자신의 노예에게 암살당했다. 당시 오나라에서는 전쟁에서 잡은 포로를 다리 힘줄을 끊어 앉은뱅이로 만들고 배를 젓는 노예로 부렸다. 여제왕이 배에 오르자 노예는 들고 있던 노(櫓)로써 왕의 정수리를 내리쳐 척살하였다.

 

다음으로 셋째 이매(夷脢)왕이 뒤를 이었다. 이매왕은 아예 동생 계찰을 정승으로 삼았다. 수몽왕의 혜안대로 계찰은 전쟁 대신 외교로서 극읍(棘邑), 역읍(櫟邑), 마읍(麻邑) 세 고을을 병합하여 나라의 경계를 넓혔다. 그러던 이매왕마저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병으로 죽자 이제는 드디어 수몽왕이 바라던 대로 계찰이 왕위를 이어받을 차례인데, 이때 문제가 생겼다. 이매왕의 아들인 요(僚)가 삼촌인 계찰을 누르고 자신이 왕이 된 것이다. 수몽왕은 현명하고 통찰력이 있었으나, 권력을 향한 후손들의 욕심과 비열함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요왕이 즉위한 지 어언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 중에 야심 많은 공자 광(光)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는 큰아들 제번왕의 장자이니, 요왕에게는 사촌 형이 된다. 섣불리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었지만, 의뭉스런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일절 드러내지 않고 주색잡기로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용 못 된 이무기가 발톱을 감추고 똬리를 틀고 앉은 형상이다. 그때 그의 눈앞에 기적같이 해결사가 나타났다. 바로 춘추의 말미를 장식할 영웅 오자서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오자서 열전〉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오자서는 본래 초나라 사람이다. 필(邲) 땅의 주역 오삼의 증손자이다. 그의 망명은 초평왕의 엽색 행각에서 비롯되었다.”

황하와 장강이 운명적으로 격돌한 필(邲)의 전쟁 이래 다시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천하 패자 초장왕이 죽은 지도 60여 년이 넘어 초나라는 나라의 위세가 예전만은 못하였으나 남방의 맹주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때 초나라의 군주 초평왕은 여자 욕심이 유별났다. 허리가 가늘고 발이 작은 여인을 특별히 좋아해서, 궁인들도 허리 가는 여자만 뽑다 보니 세상에서는 초나라 궁궐을 세요궁(細腰宮, 가는 허리 궁전)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젊은 여인들 사이에도 이런 풍조가 트랜드로 퍼져 허리를 줄이려고 물만 마시다가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여자가 속출하였다. 또 있다. 발이 작은 여인은 걸음걸이부터가 낭창낭창하다. 이 또한 왕의 취향이라 신분이 귀한 여인들은 어릴 때부터 발을 꽁꽁 싸매어 발이 자라지 않게 하였다. 왕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다 보니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신하들이 넘쳐났다. 그중에서도 눈치 빠른 비무극(費無極)은 특히 왕의 총애를 받았다. 입에 발린 아첨인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잘못하면 오히려 상대에게 경멸당하기 일쑤인데,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감각과 뻔뻔스러움을 타고났다. 오늘날 왕에게 먹혀드는 인물은 누가 뭐라도 비무극이다.

그의 공식적인 직책은 세자의 소사(小師), 이른바 세자의 작은 스승이다. 오늘 왕의 편전을 찾은 것도 진(秦)의 공주 맹영(孟嬴)과 세자의 혼사에 대한 의논이다. 그런데 주고받는 대화가 가관이었다.

 

▲AI 생성 이미지

 

“신은 그처럼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 보았습니다. 나긋한 허리는 우선 보기에도 한 줌이 채 안 되고, 외씨 가죽신을 신은 발은 어린애 주먹보다 작았습니다. 옛날에 초문왕의 규희나, 진헌공의 여희가 아름다웠다고 하지만 맹영의 만분지일도 못됐을 것입니다!”

“뭐라고 했느냐? 대체 누가 그렇다는 이야긴가?”

“세자빈으로 모셔 온 진나라 공주 맹영의 이야깁니다!”

왕은 어젯밤 숙취로 뿌옜던 시야가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허리가 한 줌’이니 ‘조막만 한 발’이니, 귀가 솔깃한 말이었다. 비무극으로서도 자못 흥미로운 일이다. 허리 가늘고 발이 작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왕이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왕은 얼굴부터 상기되었다. 인간의 수컷만치 상상만으로 흥분할 수 있는 동물도 없다.

“흐음! 그래? 일단 만나나 봐야겠다.”

그래서 맹영은 시아버지 될 사람부터 만났다. 왕은 그녀를 보자 민망할 정도로 눈을 떼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였다. 곁눈질로 여인의 몸매를 살피더니 덥썩 손목을 잡아끌었다. 여인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버들잎처럼 가는 눈의 흰자위가 검은 눈썹의 그림자를 받아 반짝 빛났다. 순간 왕은 전율을 느끼면서 소름이 돋았다. 많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그녀와 첫 대면만큼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쩝, 과인은 공연히 대왕이란 소리만 들었지. 저런 미녀 하나 품지 못했구나. 참으로 허송세월이었다.’

비무극이 짐짓 목소리를 낮췄다.

“대왕께서 정녕 뜻이 있으시면, 취하시면 될 일입니다.”

“이미 며느릿감으로 데려온 여인이라, 세상의 눈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진(秦)의 공주가 우리 왕실로 시집을 왔을 뿐입니다. 아직 누구와 혼인하게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대신 시녀 하나를 세자께 내리시면 될 일입니다.”

결국 그날 밤에 초평왕이 맹영을 품었다. 왕은 그녀의 가냘픈 허리와 그 허리가 받치고 있는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기쁨에 몸을 떨었다. 여자도 수줍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속살을 맞대는 순간, 이미 껍질이 벗겨진 복숭아처럼 즙을 뿜어내며 남자의 여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한번은 왕이 사냥을 갔다가 고뿔에 걸렸는데, 그 영향인지 ‘발기부전’이라는 병을 얻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맹영의 작은 발을 만지면 강한 정복욕이 솟아오르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왕에게 호락호락 발을 내주지 않고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다. 이상하게 생각한 궁녀가 물었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보아도 대왕의 병이 좋아지지 않고 그나마 마마의 발만 효력이 있는데 왜 자꾸 피해 다니십니까?”

“낸들 아느냐? 왠지 그러고 싶은걸!”

왕은 새로운 연인의 향기에 흠뻑 취해갔다. 마침 왕후의 자리도 비어 있던 터라, 맹영을 정실로 삼았다. 그 후 맹영에게 자식까지 얻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왕은 이제야 세상의 기쁨을 모두 맛보는 듯하였다. 아들이 첫돌이 되자 아예 그를 세자로 책봉하고 싶어졌다. 이미 장성한 세자가 있는 마당에 젖먹이를 세자로 책봉하려는 시도는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다.

 

위태위태하던 일은 결국 대전 회의에서 사달이 났다. 이때 세자의 태사(太師, 큰 스승)는 오사(吳泗)였다. 그는 필(邲) 전쟁의 주역 오삼의 손자이다. 당읍(堂邑) 땅을 식읍으로 하는 대부로서 무장의 자질과 용기를 갖추었다. 다만 그 옛날 왕의 면전에서 영윤을 타박하던 오삼의 손자답게 대놓고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것이 병이라면 병이었다. 이날도 전혀 말을 돌리지 않았다.

“가당치도 않습니다. 이 일은 대왕께서 며느리를 취하신 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지금 당장 비무극의 목부터 자르세요!”

어떤 경우에서든지 신하가 왕에게 간언할 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구석이 있다. 이를 역린(逆鱗)이라고 한다. 용(龍)이란 짐승은 잘 달래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목 아래에 있는 한 자 남짓 되는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왕은 붉으락푸르락 수치와 분노로 눈빛이 번들거렸다. 수많은 신하가 지켜보는 공식 석상에서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될 치부를 보였다.

“저! 저! 저런 못된 것이 있나. 저놈이 정녕 과인의 신하란 말인가? 저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며칠 후 오사의 일족이 모두 참수형을 당하고 아들 오자서만 간신히 몸을 피했다. 춘추시대 전반기에 관중(管仲)이 있어 시대의 흐름을 이끌었다면, 이 시기에는 오자서가 천하의 대세를 가르는 풍운의 중심에 서게 된다. 오자서는 아들과 함께 목을 맨 아내의 부릅뜬 눈을 감겨주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대! 뜻대로 쉬구려. 언제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까지 이 원수를 잊지 않으리라.”

부랴부랴 그길로 달아났다. 수배령이 내렸다. 마을마다 통문이 돌고 지방마다 죄인의 화상이 걸렸다. 오자서는 이후 송(宋)을 거쳐 진(陳)까지 떠돌아다녔다. 그가 몸 붙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댈 데라고는 초와 앙숙인 남방의 오(吳)나라 정도이다.

그해는 겨우내 눈도 많았다. 천신만고 끝에 오자서가 오나라 매리성(梅里城)에 나타난 것은 강물이 부풀어오는 봄날이었다. 계절이 바뀌느라 삼라만상이 분주한 어느 날, 드디어 오자서는 공자 광(光)에게 접근하였다. 음주 가무를 표방하는 광의 처세가 그의 접근을 수월하게 하였다. 공자는 오자서의 말투를 보고 바로 그 신분을 알아차렸다.

“초나라가 충신 오사를 죽이자 그 아들이 외국으로 망명했다고 하더니 혹 그대가 바로 그 유명한 오자서가 아니신가?”

 

이후 며칠 동안 둘은 열국의 정세와 치국의 이치에 대해서 서로의 견해를 논했다. 광은 오자서의 식견과 판단에 감명을 받았다. 알고 보니 광 또한 마음이 탁 트인 사람이었다.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무섭게 집중해서 상대의 의견을 경청했다. ‘듣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만치 서로가 서로에게 절실했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적인 특성은 세상을 둘러 엎을 욕심과 집요함이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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