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보고 전무, 연보에도 누락…“사료 발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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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 스님 등이 조선통신중학관을 인수했다는 동아일보 제3442호(1930년 3월 16일자) 2면 기사. |
재단법인 선학원 설립조사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등 통신교육기관인 조선통신중학관(朝鮮通信中學館)을 홍세뢰, 조성희 씨 등과 함께 인수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재단법인 선학원이 만해 스님 관련 사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소개한 <동아일보> 제3442호(1930년 3월 16일자) ‘조선통신중학 부활’ 기사와 <중외일보> 제1155호(1930년 3월 18일자) ‘조선통신중학 강의록 재발행’ 기사 등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했다.
홍세뢰, 조성희 씨 등과 함께 인수
만해 스님이 통신과정이긴 하지만 중등교육기관을 인수·운영한 사실은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또 각종 만해 스님 연보에도 기록되지 않을 정도로 잊힌 사실이다.
두 기사에 따르면 만해 스님은 홍세뢰, 조성희 등과 함께 조선통신중학관을 인수해 안국동 40번지에 사무소를 두었다. 기사에 소개된 ‘안국동 40번지’는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재단법인 선학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도 이곳에는 재단법인 선학원 사무처와 중앙선원이 있다.
만해 스님과 함께 조선통신중학관을 인수한 홍세뢰, 조성희가 어떤 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홍세뢰가 만해 스님이 조선통신중학관 운영에서 손을 뗀 후 경영을 책임진 것을 보면, 인수 비용 상당수를 그가 투자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동아일보 4237호(1932년 10월 4일자) 7면 ‘유력한 재단 얻어 여자미술교 확장’ 기사에 “김화군 원동면에 있는 원동금산재련소의 홍세뢰 씨”라고 소개한 것으로 미루어 제련소를 운영하는 상당한 재력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해 스님 등은 교육기관 부족과 학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반 중등교육 희망자의 여망에 부응해 조선통신중학관을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만해 스님 등은 1930년 봄학기부터 《중학강의록》을 다시 발행하기로 하고, 새 경영 방법을 모색하고 강의록을 충실히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와 관련 <동아일보>는 “본 통신중학은 오직 하나인 조선문(朝鮮文)의 중학강의 기관으로 일반의 많은 기대를 받던 것인 바, 중간에 경영난에 빠져 수년 동안 중지되었다가 교육기관의 부족과 일반 중등교육 지망자의 학자 곤란으로 임학난을 부르짖는 오늘날에 중학강의록의 발행이 시대에 가장 적절 요구임을 절실히 느낀 동인 제씨는 경영의 새 방법으로 일반 민중의 중학지식의 보급을 위하야 진력하리라는데, 무엇보다도 그 강의록의 내용 충실을 위하야 일층 노력하는 중이라 한다.”고 보도했다.
이광수·장지영 등 유명인사 강사로 참여
<동아일보> 제3450호(1930년 3월 29일자) 2면에 게재된 ‘조선통신중학관’ 광고에 따르면 만해 스님은 조선통신중학관 관장으로 ‘수신(修身)’과 ‘한문’ 과목을 담당했다. 조선통신중학관에는 만해 스님 외에도 여러 저명인사가 강사로 합류했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 1892~1950,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와 조선어학회 제6대 이사장을 지낸 열운 장지영(洌雲 張志暎, 1887~1976, 당시 경신학교 교사)이 조선어 강사로 참여했으며, 국어학자인 강매(姜邁, ?~?, 당시 배제고보 교사)가 수신과 한문을, 조선지리학회 회장을 지낸 김도태(⾦道泰, 1891~1956, 당시 휘문고보 교사)가 지리를, 한글학회 대표이사를 지낸 동운 이중화(東芸 李重華, 1881~?)가 역사(동양사)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을 역임한 화가 장발(張勃, 1901~2001, 당시 휘문고보 교사)이 도화(圖畵)를, 문학평론가 함병업(咸秉業, 1899~?)이 국어(일본어)를 각각 맡았다.
1년 반 통신과정…중학교, 고보 졸업 학력 인정
조선통신중학관은 매월 두 차례 강의록을 발행하고, 1년 반 만에 과정을 수료할 수 있도록 했다. 과목으로는 수신, 조선어, 국어(일본어), 한문, 영어, 역사(조선사,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 지리(일본지리, 조선지리, 세계지리, 지문학), 박물(식물, 동물, 생리, 광물, 박물통론), 수학, 물리·화학, 법제·경제, 실업(농업통론, 상업통론), 체조 등이 개설됐다. 조선통신중학관의 중학 과정을 수료하면 중학교 또는 고등보통학교 졸업한 학력을 인정〔동아일보 제3465호(1930년 4월 8일자) 2면 광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