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은 정치권력의 실질적 정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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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백 편집위원 |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석 달 만에 소위 ‘강부자’(강남에 사는 부자),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출신)으로 대표되는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사 난맥으로 지지율이 폭락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불우한 그림자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취임 초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취임 직후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단행한 금융실명제와 역사 바로 세우기,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군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해체 등으로 무려 83%라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윤 대통령의 태생적 한계
새 정부의 성공 여부는 집권 1년 이내의 국정 성과에 달려 있다.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지지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통상 40%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두 달 만에 나타난 30%대라는 이례적이고 위험천만한 지지율 하락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우선 윤 대통령의 태생적 한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윤 대통령에게는 국민적 세력이 없다. 0.73% 득표 차가 말해주듯이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기에 두 후보에 대한 비호감에서 상대적으로 덜한 윤 대통령에게 그나마 박빙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국민은 초보 정치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아슬아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두 전임자의 경우 비교적 단단한 고정 지지층이 있어 정권 초기에 악재가 불거져도 40%대 지지율을 유지했지만 윤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둘째, 윤 대통령에게는 정치 내 세력이 없다. 선거 기간 내내 윤 후보가 말해왔던 “나는 여의도 정치에 빚진 게 없다”가 그것을 방증한다. 윤 대통령은 기성정치인들과 ‘달라서’ 대통령에게까지 이르렀지만, 그의 프로답지 못한 언행이 오늘날 지지율을 갉아먹고 있다. 셋째, 윤 대통령은 국민의 힘이라는 정당의 후보로 당선되었지만 사실 국민의 힘은 수권 능력이 없었다. 대선, 지선을 거치면서 그리고 최근까지 보여주는 국민의 힘의 당내 분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젊은 당 대표 하나를 두고 당내 선배 정치인들이 보여준 정치력의 부족이나 젊은 당 대표가 떠나자 당권 경쟁을 향한 권력투쟁으로 국민의 고통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집권당에 대한 실망을 더욱 가중했다. 이는 곧바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체성의 혼미
다음으로는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흐릿하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나 그의 정체성을 국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지도자 개인의 이미지를 넘어 대통령과 집권세력을 평가하고 규정하는 종합적인 인식 체계다. 그나마 한동훈 법무장관을 필두로 하는 과거 검찰 출신들이 눈에 띌 뿐이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캐치프레이즈인 ‘공정과 상식’도 이들의 대거 기용으로 인해 국민에게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우리 많은 국민은 검찰총장 윤석열, 야당 대선 후보 윤석열이 보여줬던 기득권과 구태정치의 불의·불공정에 대한 분노에 열광했다. 우리나라는 공화국이다. 공화국이 왕정과 다른 것은 공(公)과 사(私)의 엄격한 구분 때문이다. 공정의 시작은 공사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윤 대통령이 인선한 인사들이 결과적으로 성공적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국민은 대통령이 인재를 찾고 선택하는 과정 전체를 보며 그에 대한 신뢰를 측정하게 된다. 인사에 있어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폭넓게 확보했어야 된다는 말이다.
국민적 지지만이 윤 대통령의 국정 동력
여소야대 국면에서 지지율은 윤 대통령의 핵심적인 국정 동력이다. 지지율의 하락으로 임기 초반 박차를 가해서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 추진과 개혁 작업에 차질을 빚게 된다면 윤 정부만이 아닌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국민만 보고 간다.”라고는 하지만 경제위기까지 들이닥친 지금의 상황에서 지지율 반등은 쉽지 않아 보이며, 도대체 어떤 국민을 바라보고 간다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결코 일희일비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지지율은 정권교체의 의미와 실질을 모두 훼손시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권교체는 국민의 행복과 국가 번영을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정권교체를 바랐던 많은 국민은 결코 윤 대통령이 전 정권보다 ‘상대적’으로 낫기를 바란 것이 아니다. 그건 선거 기간으로 이미 끝났다. 국민은 문재인 정권 내내 점철되었던 내로남불과 몰상식을 없애고 상식을 회복하라고 정권교체를 했다. 국가라는 조직을 이끌어 가는 수장은 한 나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떠안고 가야 한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도려내기도 해야 하지만 현재의 과제들을 풀어가며 미래에 대한 비전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과의 협치는 물론 반대하는 많은 국민도 보듬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 더욱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가 절실한 지점이다. 지금부터의 모든 성적표는 오롯이 윤 대통령과 그 정부의 몫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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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 Channel News |
‘윤 대통령다움’으로 돌아가라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개혁이 그 답이다. 단순한 자신감에서 벗어나 국민적 기대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윤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국정 아젠다를 선정하고 그에 따른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권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대한민국을 살린다는 자세로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할 것을 선언하고 국민에게도 그 개혁에 따른 고통을 분담할 것을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윤석열 다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유능한 전문가·관료 집단들이 포진하고 있다지만 수시로 바뀌는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솔루션을 내놓는 일에 과연 그들만으로 가능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윤 대통령의 대통령실에는 정무, 홍보가 보이지 않는다. 도어스태핑이 우려의 대상이 된 것도 메시지는 물론 전체적인 브랜드를 관리하고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 정부의 장관급 인사 4명이 낙마를 해도 그 누구도 책임지고 사과 한마디 없다. 정치는 일정 부분 수사(rhetoric)다. 대통령실 비서실장이든 정무수석이든 인사기획비서관이든 사과는 있어야 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은 지금도, 대통령실에는 정무도 홍보도 비서실장도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능력주의 이면의 함정이다. 엘리트주의의 자만심은 외부 견제는 물론 내부 비판을 허용하지 않음으로 실패한다. 정권 스스로 하지 못하면 지지층이 해야 하는데, 이들은 정권이 성공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바람을 현실과 혼동하며 무조건적이거나 아예 비판에 귀를 막아버린다. 이 지점에서 바로 내로남불 시즌2가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지배블럭이 있다. 바로 관료다. 관료의 역사는 길고 오래다. 세계사적으로는 절대주의 왕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우리에게는 조선 초 개국 과정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YS시절 소위 실세 장관을 모실 때의 일이다. 그가 내무부 장관으로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느거(너희)들은 머(뭐) 하는 넘(사람)들이고?”라며 기존의 정치권 참모들을 힐난했다. 내무부 관료들의 삼빡한 페이퍼며 말씨, 매너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얼마지 않아서다. “그 넘들 참 못됐데이”라며 내무부 공무원들의 기계적이고 노회한 행태를 지적했다. ‘행정은 서비스’라며 야심 차게 행정개혁을 단행하려는 초심이 무너지는 데는 채 3개월이 되지 않았고, 그 실상을 알아차리는 데도 역시 6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기업이 정부다’라며 경제 규제 혁신 TF를 구성했다. 팀장이 경제부총리고, 총괄반장은 기재부 1차관이, 산하의 7개 작업반은 해당 부처 차관이 맡았다. 규제를 개혁할 사람이 그 규제를 출산한 사람인,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규제개혁, 민간 주도 성장을 이끌 책임자들을 관료들로 도배해버린 꼴이다. 역대 정권이 모두 실패한 것이 규제개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5년 단임인 대통령이 영속적 관료집단에 휘둘리는 순간 개혁은 물 건너간다. 윤 대통령의 첫 조각의 인사들이 검찰·관료에 집중된 것과 지지율 하락의 첫째 요인이 인사문제라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언젠가 국민에게 고통 분담도 호소할 수 있다. 한 정부는 결코 유능한 관료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 때 35차례나 언급했던 ‘자유’와 공정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그것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어떠한지도 모호하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은 기득권세력이다. 그들은 나라의 제도를 심히 왜곡시키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해왔다. 이번 정권교체의 과정에서도 보수라는 이름으로 윤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그들의 영역을 재구축했다. 20·30대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도,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도 바로 공정과 상식에 기반한 ‘사회적 사다리’의 복원이다. 기득권세력이 냉정하고 매몰차게 치워버린 그 사다리 말이다. 윤 정부는 빠른 시일 내 공정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내고 기득권으로 말미암은 우리 사회의 불공정을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국민의힘이 대선과 지선에서 승리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권교체의 열망에 따른 측면이 매우 컸다. 따라서 당의 노선과 정책, 인적 구성 등을 개선하는 혁신의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이준석 대표를 징계하고 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모습에서 도로 구태당으로 회귀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국민의힘의 혁신 없이는 다가오는 2024년 총선은 물론 윤 정부의 성공도 정권 재창출도 모두가 난망하다. 이른바 윤핵관 등 실세 그룹이 당을 좌지우지하고, 소속 의원들은 공천을 의식해 실세들 눈치만 보는 정당으로는 미래가 없다. 윤 대통령이 개혁의 키를 잡고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동력을 뒷받침할 때 대통령도 당도 상생할 것이다.
개혁은 윤 대통령의 소명이다
윤 대통령이 싸워야 할 대상은 명백하다. 첫째, 지난 정권하에서 자행된 온갖 부조리와 불공정, 불법들을 ‘공정과 상식’의 이름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것이 여든 야든. 둘째, 지금이라도 대통령실을 돌아보아 한쪽으로 편향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늘공’의 전문가적 지식과 ‘어공’의 정무적 지혜와 용기가 함께 어우러지도록 대통령실과 정부 곳곳을 개편해야 한다. 셋째, 여권 우파 내의 기득권세력들과 개혁에 완강히 저항하는 관료들, 이들과 한판 할 각오를 해야 한다. 넷째, 여당인 국민의힘이 새롭게 혁신하도록 선도해야 한다. 그 성적표는 돌아오는 총선이다, 오늘의 윤 대통령 탄생의 가장 큰 이유는 ‘문재명의 나라’는 안 된다는 국민의 간곡한 바램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지지율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국민적 바램이고 처절한 실망이다.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와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고 미래로 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과감히 치우고 넘어야 한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소명이다. 더 늦기 전에!
[출처 : 모닝포커스(http://www.morningfoc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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