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 포커스] ‘12ㆍ12’와 장태완 장군의 눈물

김영호 기자 / 기사승인 : 2023-12-04 09: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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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중반, 필자는 잠실에 있는 장태완 장군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막 재향군인회장에 취임한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장 장군 내외는 ‘광주에서 언론인이 왔다’며 살갑게 맞아주었다.

 

▲김대원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1979년 12월 13일 새벽 장태완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체포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압송된다.


 그 몇 시간 후 전두환은 쿠데타 성공을 자축하는 신군부 패거리들의 회식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을 불러제꼈다.

 보안사 특수수사대의 가혹한 조사를 받은 두 달 동안 장 장군의 체중은 10kg 넘게 빠졌고 수사관이 불러주는 전역지원서를 쓴 다음 풀려날 수 있었다.

 관악구 봉천동의 24평짜리 좁은 집에는 보안사 요원들이 반년이나 상주했고 석방 두 달 만에 그는 부친상을 치러야 했다.

 아들이 반란군에게 체포된 후 ‘옛부터 역모자들의 손에서 충신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우리 역사’라며 막걸리 외엔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다 세상을 뜬 것이다.

 2년 후 이번엔 참척의 슬픔이 그를 덮쳐왔다.

 가택연금 당시 보안대원 2명이 입시 준비를 하는 자신의 방을 차지한 와중에도 서울대에 합격했던 아들이 사라진 것이다.

 “방학중이라 아들 친구들 집으로 전화를 해봤으나 아무 소식도 찾을 수 없이 한달이 지났습니다. 2월 초, 아내가 전화를 받더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어요. 아들이 할아버지 묘소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전화였습니다.”

 자신의 승용차에 아들의 시신을 안고 귀경하던 장 장군은 혀로 아들의 눈과 코 귀와 입에 박혀있던 얼음덩어리를 녹여주었다. 아들이 추워 보여 그랬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설명하던 장 장군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고 곁에 있던 부인도 오열했다.

 짧지 않은 기자 생활을 하며 여러 인터뷰를 해봤지만, 그 순간 ‘인터뷰이’와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웠다.

 # 군사반란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분노에 시달리던 그는 수면제 등 10여 가지 약을 달고 살다 2010년 7월 세상을 떠났다.

 2년 후 부인도 딸에게 ‘부디 너만은 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유서를 남기고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장 장군 뿐이 아니다.

 12·12 당시 부하들의 총을 맞고 체포된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1989년 의정부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과 이틀 전 장태완과 만나 ‘저놈들 망하는 꼴 보기 전엔 절대 죽지 말자’고 다짐했던 터라 의문사 의혹이 제기됐다.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이던 김오랑 소령. 그는 정병주 장군을 불법 체포하려 총기를 난사하는 3공수여단 병력에 권총을 들고 저항하다 6발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다. 당시 나이 35세.

 이 사건의 충격으로 김 소령의 모친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부인도 충격을 받아 실명했으며 맹인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다 1993년 실족사한다.

 국방부 벙커에선 병장 정선엽이 상부의 명령 없이 총을 내어줄 수 없다고 저항하다 반란군 총탄에 스러졌다.

 #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다. 관객들은 SNS에서 자신의 분노지수를 보여주는 ‘심박수 챌린지’를 벌이기도 한다. 불의한 자들이 승리하는 결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장태완 장군 등의 희생이 결코 덧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 참군인들 덕에 참모총장 연행에 대한 대통령 재가가 ‘12.13. 05:10 a.m.’, 즉 사후 재가로 기록됐고 결국 그 주모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전두환 집단이 12·12, 5·18을 거쳐 집권까지 달려간 이유도 영화에서 잘 그려진 군 수뇌부의 비겁함 만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정치인과 언론인 그리고 학자들의 훼절과 곡학아세가 있었다. 절대 잊으면 안 되는 뼈아픈 역사다.

 <김대원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출처: 광주드림(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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