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외교부장,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맹비난하며 정의용 장관에게 “옳고 그름을 파악해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라” 등 훈계조 발언...
-싱하이밍 중국대사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반중 감정을 부추기고..."
-구한말 이 땅에서 횡포를 부리던 위안스카이를 연상케 해
-세상이 한참 바뀌었는데도 소국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해 중국에 대해 계속 쩔쩔매는 사람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후 한국인들의 반중 감정이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각계에서 자주 김치, 한복 등 한국의 고유문화를 도용하거나 자신들의 것이라고 우겨 한국에서 특히 젊은 세대의 중국에 대한 반감이 쌓일 대로 쌓여 있었는데 올림픽 개막식에 중국 내 소수민족들을 소개한다고 한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고, 조선족이 사는 지린성 소개 영상에서 장구춤, 상모돌리기 등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반중 감정이 고조되었다. 게다가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실격으로 처리되어 탈락하고 대신 중국 선수들이 결승에 진출하는 일이 벌어지자 반중 감정이 폭발하였다. 한국 선수들에 대한 편파 판정에 대해 일부 주요 외신도 우려를 표한 것을 보면 판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대해 당연히 국내 여론은 정부가 중국 정부에 항의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문재인 정부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국회의장과 문체부 장관은 무엇이 두려운지 제대로 항의는커녕 두리뭉실한 말만 하였고 청와대는 ‘속상한 국민의 마음 잘 안다’라고만 하였다. 청와대가 이러니 외교부도 답답한 반응을 보였다. 평소 어떤 이슈가 발생하면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거친 말을 서슴지 않았던 민주당 의원들은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 다만 한 표가 아쉬운 민주당 대선 후보는 강경한 견해를 밝히었는데 그간 중국에 대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라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환구시보는 “포퓰리즘 측면에서 민의를 오도하자,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보도하였다. 중국 정부가 보기에도 한국 정부는 중국에 반발하지는 않고 한국민에게 중국의 입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현 상황에서 눈에 거슬리는 것은 주한 중국 대사관의 행태이다. 중국 대사관은 SNS에서 “최근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중국 정부와 베이징올림픽 전체를 겨냥해 반중 감정을 부추기고 양국 국민의 감정을 격화시켜 중국 네티즌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라고 하고 “엄중한 우려와 엄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외국공관이 주재국 언론과 정치인들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선을 넘은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 답변에서 "주재국 언론 보도와 정치인 발언 등에 대한 외국공관의 공개적 입장표명은 주재국의 상황과 정서를 존중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였다. ‘경고’의 뉘앙스는 전혀 읽히지 않는다. 중국 대사관의 행동은 외교부에서 중국 대사관 고위인사를 외교부로 불러 항의하고 경고할 만한 행동이다. 만일 일본 대사관이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이번 중국 대사관의 행태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겠는데 큰 요인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그간 중국 대사관이 이와 같은 행동을 보일 때마다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싱하이밍 중국대사의 외교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과 오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야당 대선 후보가 중국의 사드 배치 철회 요구의 부당성과 공고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대해 모 일간지에 기고하여 ‘한미동맹이 중국의 이익을 해쳐선 안 된다. 중한 관계는 결코 한미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1961년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재국 내정 개입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야당 대선 후보는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러한 견해 표명은 한국의 국내정치에 대한 개입이다. 당시에도 외교부는 원론적인 언급을 하였을 뿐 중국대사에 대해 분명하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 싱하이밍 대사는 2020년 1월 부임하였는데 외교사절은 주재국 국가원수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이후에 비로소 공식적인 활동을 개시하게 되어있는 국제사회의 관례를 무시하고 신임장을 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 회견을 했으며 이때에도 한국 정부의 코로나 방역 조치와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하였다. 이런 결례에 대해 외교부가 어떤 조치를 하였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중국 대사관의 오만방자함은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 또는 중국 사람들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되어 있다 하겠다. 그러한 시각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겠으나 문재인 정부가 조장한 부분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시진핑이 2017년 4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어도 한국 정부로부터 이렇다 할 대응이 없었다. 그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였는데 베이징 대학 연설에서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하고 ‘중국몽을 함께 하겠다’라고 하였다. 한국에 대해 중국의 일부라고 이야기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한국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고, 한국 대통령은 ‘중국은 높은 봉우리이고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하면 중국은 한국을 어떻게 볼까? 당시 한국 매체의 사진기자가 중국 보안요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는데 모 여권 인사는 ‘기자가 맞을 짓을 한 것은 아니냐’고 하였다. 중국 정부는 집단폭행에 대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약속하였다는데 뒷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 외 있었던 일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의 첫 주중 대사는 신임장을 제정할 때 방명록에 중국에 대한 충성 맹세(?)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의 글을 남겼다.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양제츠 공산당 정치국 위원은 2018년과 2020년 방한 때 ‘서울에서 보자’라는 한국 측 요청을 일축하고 한국 측 고위인사를 부산으로 불러내었다. 2021년 6월 한·중 외교장관 통화 이후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의 중국 견제 구상인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맹비난하며 정의용 장관에게 “(미국의) 편향된 장단에 휩쓸려선 안 된다” “옳고 그름을 파악해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라” 등 훈계조의 발언을 쏟아냈다. 주권국가 사이에서 오고 간 대화라고 믿기 어려운 내용이다. 왕이 부장이 2020년 11월 방한하였을 때는 중국에서 서열이 25위에 불과한 인물을 만나려고 한국의 당·정·청 인사들이 총출동하였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니 앞으로도 한국 측의 적절한 대응이 없으면 주한 중국대사는 그간의 도를 넘는 행동을 계속할 것으로 우려된다. 싱하이밍 중국대사를 보면서 구한말 이 땅에서 횡포를 부렸던 위안스카이를 연상하는 것은 지나친 피해의식일까? 갑신정변 다음 해인 1885년 위안스카이는 스물여섯 살 나이에 오늘날의 주한 중국대사에 해당하는 조선 주재 총리교섭통상대신(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으로 부임하여 약 10년간 조선의 내정과 외교에 마구잡이로 간섭하며 마치 식민지 총독처럼 행동하였다. 그의 오만방자함과 당시 조선 군주와 관리들의 비굴함에 관해서는 책 한 권이 될 정도 분량의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19세기 말 조선이 아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며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과 소프트파워도 보유하고 있다. 19세기 말 동북아시아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 여전히 중화질서에 함몰되어 있던 조선은 중국을 혼자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작금의 국제 판세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한국은 무엇보다도 최강국 미국을 동맹으로 두고 있다. 세상이 한참 바뀌었는데도 소국의식에서 탈피하지 못하여 중국에 대해 계속 쩔쩔매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가? 중국이 북한에 대해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주기를 기대하여 그런 것인가?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약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기대는 접어야 한다.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 고려 때문인가? 한중 경제 관계는 오로지 우리만 득을 보는 관계가 아니다. 중국도 얻는 것이 있는 관계이다. 그리고 미중 갈등 속에 안보와 경제는 연계되고 있다. 그만큼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여 접근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저자세를 계속한다면 무조건 ‘중국 편’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필자 소개>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
주러시아 대사관 경제공사 등 4차례에 걸쳐 11년 간 러시아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외교관이다. 현재는 각종 매체에 한·러 관계와 러시아에 관해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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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환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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