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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백 편집위원 |
이재명 대표는 지난 20일 의총에서 ‘야당 탄압’, ‘정적 제거’를 그만두라고 역설하며, 지금의 상황을 ‘역사의 퇴행’이라고 진단하고, 개인 차원의 비리를 정쟁으로 몰아가며, 싸우자고 의원들을 선동했다. 명분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상태이고 다른 여러 가지 사안에 걸쳐서도 검경의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 한동훈 장관이 말했듯이 이 대표가 기소된 것은 정치 탄압이 아니라 범죄 수사일 뿐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역대 여느 대통령 선거 패자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역대 다른 후보들이 현실 정치를 떠나 꽤 긴 시간을 숙려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면 이 대표는 지체없이 현실 정치에 복귀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국회의원 배지에 다수당 대표까지 2중의 방탄조끼를 입고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재명의 나라’가 된 듯하다.
연일 언론에서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기사가 넘쳐나고 그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과 관련자들에 대한 뉴스, 그리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목청 돋우어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질타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재명 대표는 야당지도자라기보다는 특정 집단의 보스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나 민주당,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 그 결과는 정치 실종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가져다주는 정치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반지성적 성격을 드러낸다.
첫째, 정치 실종(失踪)이다. 역사상 어느 야당 대표도 이 대표만큼 리스크를 안은 적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시절 ‘빨갱이 논쟁’에 휘말렸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 사람을 구명하려고 공당 전체가 나서고 그의 지지자들까지 가세해서 비상식과 불의가 판을 치는 비정상의 정치가 구현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는 온데간데없고 법의 잣대만이 난무한다. 민주당이라는 역사 깊은 정당을 장악한 이재명 정치세력은 민생보다는 정부 여당의 실수나 약점을 들추는 데 열중이고, 지금 민주당을 망치고 국정 파트너로서의 야당이 감당해야 할 책무를 방기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불안과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 자체가 야당이 기고만장할 일은 아니다.
야당은 할 일을 하면 된다. 건전한 국정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국민들이 보고 있다. 민주당이 이 대표 한 사람 방탄을 위해 사법 정쟁을 일삼느라 중요한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많은 개혁 과제들이 이재명의 민주당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어도 온 상임위가 내내 이재명 대표와 둘러싼 일들로 여야 간에 공방만이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 내의 민주적 사고나 품격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법 너머에 있는 세상을 볼 수 있는 게 정치다. 그러나 정치가 사법적 논쟁으로 갈 길을 잃어버리고 정치 스스로 법 앞에 굴복하고 있다. 가히 ‘정치 실종’이다.
정치가 실종되니 허구적인 말들과 억지만이 공허하게 정치판에 메아리친다. 정적. 대선도 이미 끝났는데 이 대표 자신이 윤 대통령의 정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맞는 것인가. 더 나아가 정권으로부터 탄압받는 야당이라니. 아니 지금 국회의 의석이 169석이나 되는 거대 야당을 누가 어떻게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보복.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무슨 정치적으로 받을 빚이 있어 보복한단 말인가. 전임 문재인 정권이 검찰과 사법부까지 장악하는 바람에 제대로 못 했던 수사와 재판을 이제 하는 것뿐이다. 외교 참사. 이 대표와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순방 외교 전체를 외교 참사라고 불렀다. 본질과 무관한 단순한 해프닝에 ‘참사’라는 단어를 어떻게 쉽게도 사용한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선동가적 낙인찍기 기질을 드러낸 저급한 사고다. 도무지 말들이 공허하다.
민주당의 반민주적 사당화는 한국 정치의 퇴행
둘째, 공당(公黨)의 사당(私黨)화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재명의 리스크를 고스란히 안아 민주당의 리스크가 되어버렸다. 지금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행태는 공당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한 개인의 사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민주적 공당이 갖는 민주성, 다양성, 유연성은 사라지고 일사불란한 전제적(專制的) 사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상대 정당이나 국민적 합의가 되어있지 않은 법안도 자기 필요에 따라 만들어 버리는 입법독재를 서슴지 않는다. 검찰이나 경찰이 이 대표의 각종 의혹에 대해 법적인 조처를 할 때마다 팬덤 지지층과 민주당은 결사적으로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대선 막판에 이재명 후보를 도왔던 26세의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이재명 본인이 발탁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과정에서 결국 그를 이재명은 버렸다. 박지현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문을 읽으며, “민주주의에 가슴 뛰던 그 민주당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라던 그 시각, 이재명은 “우리 개딸님의 애정 고맙잖아”라며 그의 호소를 외면했다. 지난날 군사독재에 항거할 때 군사독재만 물러나게 하면 민주주의는 오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의 전제적 행태를 보면 새로운 민주화운동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건전한 집권 대안 세력이 없으면 한국 정치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셋째,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선거 불복(不服)이다.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세상을 규정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 5년은 그야말로 탈진실의 시간이었다.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북핵에 대한 순진한 접근 등으로 말미암아 많은 국민이 지치고 힘들었다. 이런 것들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라고 정권교체를 했지만, 아직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회 의석을 믿고 ‘검수완박’을 밀어붙이고, 공공기관장들도 임기 운운하며 자리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통치철학과 맞지 않는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면서까지 알박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건 누가 봐도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이다. 한술 더 떠 취임 6개월도 안 된 대통령의 퇴진을 운운한다. 그건 헌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나 하는 최후의 수단임을 모르지 않을 것인바, 철없는 아이의 투정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려면 선거는 왜 있는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포기하자는 것인지, 나아가 정치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인지, 민주당은 이에 답해야 한다. 민주주의 꽃이 선거라고 하지 않는가. 선거를 통해 권력을 교체했건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그만두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반민주적 발상이다.
이기심으로 뭉친 인간은 그 이기심으로 흩어져
민주당이 점점 이 대표의 ‘인질’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민주당 의원들은 난감할 것이다. 정말 야당 탄압이라면 나서 싸우겠지만 갈수록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에 혼란스러울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표의 사법적 문제에 대해 자체적으로 잘못을 인식하고 자정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이 대표의 사법적 리스크에 대한 정당한 수사에 저항할 것이 아니라 협조해야 한다. 만일 엊그제 구속된 민주연구원부원장 김용의 8억 수수가 대선자금으로 흘러갔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민주당의 존폐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인간은 이기심으로 ‘뭉치고’ 이기심으로 ‘흩어진다.’. 지금 그들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 유동규도 김용도, 그리고 정진상까지도 이재명 대표와 이기심으로 뭉쳤지만, 아마 머지않아 흩어질 것이다. 이 대표에게 정작 사법적으로 목이 조여 올 때도 끝까지 이 대표를 지키겠다고 남을 의원이 얼마나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갈라진 이 나라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윤 대통령의 시대적 과제
우리 국민은 진보, 보수를 떠나서 이재명 정치세력으로부터 민주당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제발 민주당 지지층이 팬덤을 극복하고 진정한 야당으로 민주당이 거듭날 수 있도록, 품격이 있는 전통적인 민주당의 본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아무리 야당과 그의 지지자들이 이재명 리스크를 떨쳐내기 위해 갖은 물타기를 시도하며 윤 대통령과 그 주변을 끌어들이려 하지만 이재명의 비리 의혹과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무엇보다 취임 5개월여밖에 안 된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윤석열 정부에 흠집을 내어보자는 것은 정치 도의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당도 국회도 대통령도 다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비방과 흠집 내기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야당을 하겠다는 것인가. 민주당으로서는 감내하지 않아도 될 일을 대표 한 사람 잘못 선택해 이 어려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 환경하에서 양비론이 횡행하고, 정의와 불의의 경계가 모호하고, 공정과 불공정이 각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달라진다면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그 건강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야당은 윤석열 정부에 대해 상식과 논리로 비판하되, 더는 이재명의 리스크를 가지고 국가적 역량을 소모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로 지금 같이 위기와 엄중한 때가 있었나 할 정도로 경제도 안보도 국제정세도 심각하다. 온 국민과 더불어 정부와 정치권이 함께 힘을 합쳐도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 여당은 이런 위기와 파고에 더해 야당의 차원 낮은 정치 공세마저 극복해야 하는 만큼 더욱 분발하고 민심에 귀 기울이며 세심히 살피고 잘해나가야 한다. 결국 언젠가는 민주당이 그전과 같은 정상적인 민주적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겠는가. 지난 정부처럼 지금의 정부·여당도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서서 확증 편향으로 사물을 보고 상대를 백안시 한다면, 위기를 넘어 파국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내하며 찢긴 이 나라를 하나로 모으고 화합의 정치를 이루어 내는 것, 이것이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0.73%가 주는 시대적 숙제다.
[출처]: 모닝포커스(http://www.morningfoc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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