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미국의 대중 정책에는 변화가 없고, 중국도 시진핑이 물러나기 전까지는 미국에 굴복하기 보다는 장기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러시아를 공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미국 편을 들 가능성이 낮다고....장차 중국이 여러 나라로 쪼개질 것이라는 전망이 자주 제기되는데 그 예언이 러시아에 의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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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박병환] 미-중 갈등 악화 가능성과 러시아의 선택 |
중국이 2013년 시진핑의 취임 이후 '일대일로‘ 기치 아래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펴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자 미국이 강력히 대응함으로써 미-중 갈등이 시작되었다. 양국관계는 무역 분쟁에 이어 화웨이 사태, 코로나19 책임론, 상호 외교공관 폐쇄,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 대만 문제 등으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미국은 대만과 단교 이후 처음으로 장관급 인사를 대만에 보냄으로써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인정하지 않으며 나아가 대만과의 관계 강화, 궁극적으로 대만의 독립을 지지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7월에는 폼페이오 장관이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을 자유세계를 위협하는 사악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중국인들을 위해서도 중국 공산당을 타도해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남중국해에서는 2010년대 초부터 긴장이 이어져 왔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중국의 행동을 견제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미국의 정찰기가 중국이 일방적으로 남중국해에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에 진입한 데 대해 중국은 중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하였다. 대만 해협에서도 중국 공군기가 자주 위협 비행을 하고 있고 이에 대만과 미국이 맞대응하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금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미국의 대중 정책에는 변화가 없고, 중국도 시진핑이 물러나기 전까지는 미국에 굴복하기 보다는 장기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양국관계에 있어 긴장은 계속 고조될 것이며 그 시점이 언제일지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군사적 충돌 상태로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군사력을 보면 미국이 우세하며 중국이 먼저 도발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러시아(소련), 중국 세 나라간 양자 관계는 서로 연동되어 왔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사실상 미-중 반소 연대는 끝나고 러-중 화해가 시작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 현재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는 이해가 일치한다. 하지만 미-중 무력충돌이 현실이 되었을 때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취할 지는 미지수인데, 과연 세계 3대 군사대국인 미·러·중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해 보고자 한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소련과는 달리 러시아는 글로벌 강국이 아니라 지역강국이라고 간주하면서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존속과 유지 확대를 위해 세계 공산화라는 목표를 포기한 러시아의 위협을 부풀려왔다. 현실을 보면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동유럽 국가들과 발틱해 연안 국가들까지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미-러 양국은 중동의 시리아와 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 충돌하였으나 심각한 대립으로 발전되지는 않았다. 미-러 교역 규모가 미미하므로 미국이 경제적으로 러시아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만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 당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이유로 부분적인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정도이고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판매를 확대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발틱 해저 가스관인 노르드 스트림 Ⅱ(Nord stream Ⅱ) 공사를 방해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이므로 결론적으로 미국이 경제적으로는 러시아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G7 복귀를 주장하면서 국제분쟁의 해결에 있어 러시아의 역할을 거론하였다. 미국의 대러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으나 트럼프의 러시아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은 자주 감지된다.
최근 미국이 사실상 대중국 압박 공동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를 결성하였는데 그 일원인 인도가 러시아에 동참을 요청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현재 러시아-미국 관계는 여러 점에서 대립하고 있는 미국-중국 관계와는 전혀 다르며 타협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는 냉전이 끝난 후 정상적인 관계가 회복되었으나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와 청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양국처럼 국경이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큰 나라들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한 예는 역사적으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러-중 양국은 1996년 건설적 파트너십을 맺고 이를 2001년에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키고 우호협력조약도 체결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현재까지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대해 이렇다 할 대응조치를 취한 것이 없으며 단지 러-중 정상이 만나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공동 대처하자는 시진핑에 대해 푸틴은 립 서비스를 하고 있을 뿐이다.
푸틴은 지난해 말 국민과의 대화에서 기자의 질문에 ‘러시아는 중국과 동맹관계가 아니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냉전 시대에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하였음에도 양국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는데 러시아는 1991년 사회주의를 공식 포기하였다. 러시아에는 소련시절부터 ‘중국 위협론’이 상존하고 일반 국민들은 중국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러시아는 국가적 과제인 극동 러시아 개발을 위하여 외국인투자를 절실히 원하고 있지만 중국 자본의 유입에 대해서는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러-중 밀월 관계는 역사적 그리고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 기초가 허약하며,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양자 모두에게 위협이 되는 행위자에 대해 함께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 편의적 결속이라 하겠다.
그러면 실제로 미-중 사이에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이것이 전쟁으로까지 비화된 상황에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주목된다. 일단 원론적으로 볼 때 러시아가 중국 편에 선다면 미국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며 미국의 입장에서는 최소한 러시아가 중립을 취하길 바랄 것이다. 물론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이를 강요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러시아군을 유럽 쪽에 묶어두려고 하면 나토군을 동원하여야 하는데 미국 자신도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르는 것은 큰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중국 쪽에 군사력을 집중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러시아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러시아의 이해득실에 대한 자체 판단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국익은 무엇일까? 러시아가 중국 편에 선다면 중국의 일방적 패배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겠으나 러시아도 미국 및 그 동맹국들의 공격으로 상당한 인적 물적 피해를 보게 되는 반면에 러시아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이렇다 할 게 없고 오히려 미국의 공격을 버텨낸 자신감으로 충만한 중국에 직면하게 될 뿐이다. 러시아가 미국 편에 선다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있고 약간의 전리품을 챙길 수도 있을 것이나, 러시아 내 강한 반미 분위기가 미국 쪽에 가담하는 것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사회주의 소련이 자본주의국가들과 반나치 연합을 구성하였지만 이 경우는 소련이 나치 독일로부터 직접적으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본다.
미-중 전쟁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공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미국 편을 들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또한 미국 편을 든다고 해도 러-미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미국 입장에서는 유럽에서 자신의 발언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이든 가상적이든 러시아의 위협을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로서는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은 유사시 남중국해에 있는 중국 인공섬 기지를 선제공격하고 중국은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는데 무력출동의 범위가 이 지역에 국한된다면 러시아는 방관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중 무력충돌이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된다면 러시아는 다른 계산을 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미국 쪽에 기우는 것이 될 수 있겠으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할 가능성도 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자연장애물이 거의 없는 거대한 평원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가상 적국과의 사이에 되도록 폭넓은 완충지대를 형성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전략적 고려에 따라 주변 작은 나라들을 위성국으로 만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침공’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2차 대전 후 한반도 북부에 공산정권을 세운 것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중국과의 4천 킬로미터가 넘는 국경은 매우 불안한 것이다.
러시아는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되, 즉 중국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지만 이 기회를 이용하여 중국과의 국경지대에 완충지대를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소련은 1920년대 중국의 혼란기를 틈타 외몽골 지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여 중국으로부터 독립된 몽골공화국을 세워 위성국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행동을 보일지 모른다. 우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좀 더 나아간다면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에 거주하는 몽골족의 민족주의를 부추겨 몽골공화국과 통합하게 할 수 있을 것이며 만주 지역도 내부적인 호응이 있다면 시도할 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이러한 유혹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14개국 가운데 파키스탄 및 북한을 빼고는 모두와 이런저런 이유로 중국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나라들이 중국의 위세에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나 중국이 미국과 충돌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 하나만 상대하기도 벅찰 텐데 동시다발적으로 주변국들이 움직인다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가 중국 영토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분열을 촉진하여 약화시키는 것에 대해 미국으로서는 반발할 이유가 없다. 장차 중국이 여러 나라로 쪼개질 것이라는 전망이 자주 제기되는데 그 예언이 러시아에 의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어느 나라이든 이웃나라가 위협적이기 보다는 다루기 쉬운 상대이길 바라기 마련이다. 러시아로서는 당연히 강한 중국보다는 약한 중국을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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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환 소장 |
<필자 소개>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
주러시아 대사관 경제공사 등 4차례에 걸쳐 11년 간 러시아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외교관이다. 현재는 각종 매체에 한·러 관계와 러시아에 관해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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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한국 외교에는 왜 러시아가 없을까? -박병환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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