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의존을 배우다』-페더 키테이

이영 기자 / 기사승인 : 2024-01-07 06: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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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서 중증 인지장애를 가진 딸 ‘세샤’를 보살핀 경험이
철학자인 자신에게 제기한 문제들을 사유한 책
-“사유할 줄 아는 능력과 무관하게 기쁨과 사랑을 나누는 능력,
그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선물임을 배웠다”
-“의존으로 세계를 엮어나갈 때 그저 생존하는 삶이 아닌
다 함께 피어나는 존엄한 삶에 다다를 수 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장애학과 돌봄 이론 분야의 석학인 에바 페더 키테이의 의존을 배우다’(반비·번역 김준혁)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키테이는 중증 인지장애를 가진 딸 세샤의 어머니로서 딸을 보살핀 경험이 철학자인 자신에게 제기한 문제들을 사유한다. 책은 딸의 장애와 함께 살아낸 개인적인 현실에서 출발해서 기존 철학의 틀을 토대부터 허무는 새로운 철학을 써나가는 데까지 나아간다.

 

 전통 철학은 사유할 줄 아는 이성적인 인간을 전제해왔다. 그렇다면 인지장애를 비롯해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키테이의 딸 세샤를 철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샤는 말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으며, 대화를 할 수 없기에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철학에서 전제하는 인간 조건인 이성을 지니지 못한 세샤를 인간 바깥의 존재로 바라봐야 할까? 자신이 헌신해온 철학이 사랑하는 딸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할 때, 철학자로서의 삶과 어머니로서의 삶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키테이는 세샤와 함께한 삶이 철학에 일으키는 불화를 성찰하며, 인지장애라는 렌즈를 통해 좋은 삶과 정상성, 인격과 존엄성 같은 철학적 개념들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세샤는 베토벤과 바흐를 즐겨 듣고, 그 기쁨을 타인과 나누는 능력을 지녔다. 키테이는 세샤와의 삶을 통해 사유할 줄 아는 능력과 무관하게 기쁨과 사랑을 나누는 능력, 그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선물임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통 철학이 전제하는 인간의 조건에 의구심을 품게 됐다고 말한다. 이 깨달음은 인간의 조건을 이성에서 찾아왔기에 이성을 지니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소수자나 비인간 존재들의 존엄과 권리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전통 철학의 인격과 존엄성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이처럼 장애의 렌즈로 철학을 바라볼 때 삶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가르침을 얻는다.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의존하는 이를 돌보는 돌봄 제공자 또한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존하며 살아간다. 의존이 없다면 우리는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타인과 얽혀 사는 존재로서 우리는 의존을 통해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내고, 더 잘 의존함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인간 존재로서 지니는 취약성과 위태로움이 특별한 친밀감을 경험하게 하며, 타인과 나를 우리로 상호작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의존을 배우다는 이처럼 우리 모두 의존으로 세계를 엮어나갈 때 그저 생존하는 삶이 아닌 다 함께 피어나는 존엄한 삶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저자가 장애와 함께한 삶의 생생한 경험에서 이끌어낸 귀중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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