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가장 오랜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있었다. 장례식은 이날 오전 11시(한국시간 19일 오후 7시)에 시작됐다. 앞서 나흘간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일반인 참배를 마친 여왕의 관은 장례식을 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졌다.
여왕이 25세였던 1954년 대관식을 치렀고, 1947년 결혼식을 올렸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여왕의 96세 일생을 기리며 1분에 1차례씩 종을 울렸다. 이어 영국 전역에서 2분간 묵념하고 영국 국가를 불렀으며, 런던 히스로 공항은 묵념 시간에 맞춰 항공기 이·착륙을 15분간 중단했다. 그리고 왕실 백파이프 연주자가 여왕의 영면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자장가를 연주하고 장례식이 끝났으며, 여왕의 관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떠나 버킹엄궁을 경유해 웰링턴 아치로 이동했다.
찰스 3세 국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이 걸어서 뒤를 따랐고, 여왕의 관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수백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작별을 고했다. 웰링턴 아치에 도착한 여왕의 관은 운구차에 실려 버크셔주 윈저의 윈저성으로 옮겨졌고, 왕실 가족을 포함해 800명 정도가 모여 소규모 예식을 치렀다. 그리고 여왕의 관은 윈저성 납골당으로 이동해 지난해 4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공 옆에 묻혔다.
1926년 조지 6세의 장녀로 태어난 여왕은 1952년 국왕에 즉위해 영국 최장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70년 재위 기록을 세우고 지난 8일 서거했다. 세계 최장 재위 기록은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의 72년이다. 왕위를 계승한 여왕의 장남 찰스 3세는 내년에 대관식을 열고 새로운 군주이자 국가 원수가 되었음을 선포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왕 서거를 계기로 군주제 폐지 논의가 본격화하고, 영국의 옛 식민지였던 독립국들의 연합체인 영연방 국가들의 공화국 전환 목소리가 커지면서 찰스 3세가 큰 도전을 맞이할 것으로 본다.
여왕의 서거와 함께 기억해야 할 두 인물이 있다. 평생을 영국으로부터 압제 받던 국가들의 독립을 위해 투쟁을 이끌었던 간디와 대영제국의 흑인협오(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에 싸우다 평생을 감옥에서 지냈던 넬슨 만델라이다. 이와 함께 우리와 일본의 관계를 다시 되새겨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는 김훈의 <<하얼빈>>을 읽으려고 준비해 두었다.
오늘 아침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윤정구 교수의 페북의 담벼락이었다. 그에 의하면, 만델라가 영국 제국주의의 흑인 차별과 평생을 싸워서 얻은 교훈을 "인간은 학습하는 죄인이다"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글을 공유한다. '인간은 학습하는 죄인'이라는 말은 "과거를 돌릴 수 없지만 과거의 잘못을 학습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또한 죄는 남들에 의해서 강제로 들춰지거나 들춰지지 않기 위해 남의 죄를 먼저 들춰내는 '내로남불'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자복[자백]하고 더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날 때 진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학습지진아"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바로 다음 그림이 소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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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기억 |
배운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이루어져야 한다.
1. 인류에게 유익하다고 인정되었지만, 내게는 생소한 학문을 접하는 배움
2. 그 배운 것을 자신의 일부로, 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연습
3. 연습한 내용이 자신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실행이다.
자신이 배웠지만,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인내와 반복을 동반한 연습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 속안에 자리 잡아, 자연스런 일부가 되었지만, 자신의 실생활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이며 가짜일 수밖에 없다. 교육은 답습이 아니라, 자신이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고 발휘하는 기회이다. 그리고 배움과 실천이 중요하다. 내가 배운 것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강제로 반복하여 자신의 중요한 일과로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하루의 스케줄에, 일주일의 중요한 행사로 도입해야 한다.
탁월한 무술인, 예술가, 운동 선수는 지겨운 행위를 인내하며 반복한 사람들이다. 그 인내하며 반복하는 연습은 신체의 근육 뿐 아니라 정신적인, 심지어는 영적인 근육이 되어 자신을 전혀 다른 인간으로 변모 시킨다. 공부는 좋은 책을 한 번 읽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을 매일매일 상기하고, 그 거룩한 자신에게 매일 당부의 말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은 매일 자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다.
만델라 이야기를 하다가, 옆 길로 빠졌다. 윤정구 교수는 이런 사람을 "진성 리더"라 했다.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에 대한 이유인 존재 목적을 세우고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는 사람이 진성리더라는 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장례식을 보며 생각했다. 윤 교수도 "어떤 특정한 사람이 진성 리더인지는 학습과 개입이 끝나는 시점인 죽음까지의 되어 감의 문제"라고 말했다. 경건해지는 아침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시 현 편을 공유한다. 죽음은 어떤 것일까? 또 다른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왜냐하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락에 대한 공포로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지만, 관에 누워있는 망자는 두려움이 없다. 만약 추락해서 몸이 두 동강 난다고 해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을 것이다. 시 속에서 저 고층의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우는 화자의 아버지도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는 아직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지만, 죽음에 충분히 가까이 서 있기 때문일까? 시에서는 말하는 바는 그것이지만, 현실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현대인들의 삶이 ‘생명’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워서 그러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관념적으로 '산 것'보다 '죽은 것'에 의지하며 산다. 특히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저 필리핀 어느 마을의 묘지는 너무나도 닮아 보인다.
그렇다면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 저세상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막상 죽음이 내 앞에 다가서면 어떨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지만,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므로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다. 다만, 너무 깊이 생각해 매몰되는 것만큼은 피하자. 죽음은 매력적인 것이 아니니까. 그것은 이미 우리 앞에 준비되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애써 달려갈 필요는 없다. 죽음이란 존재의 궁금증만큼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 깊이 담아두는 편이 좋겠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을 보며 했던 생각들이다.
발코니의 시간/박은영
필리핀의 한 마을에선
암벽에 철심을 박아 관을 올려놓는 장례법이 있다
고인은
두 다리를 뻗고 허공의 난간에 몸을 맡긴다
이까짓 두려움쯤이야
살아있을 당시 이미 겪어낸 일이므로
무서워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암벽을 오르던 바람이 관 뚜껑을 발로 차거나
철심을 휘어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그저 웃는다
평온한 경직,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웠다
생은 난간에 기대어 서는 일
허공과 공허 사이
무수한 추락 앞에 내성이 생기는 일이라고
당신은 통유리 너머에서 그저 웃는다
암벽 같은 등으로 봄이 아슬아슬 이울고 있을 때
붉은 시클라멘이 피었다
막다른 향기가
서녘의 난간을 오래 붙잡고 서있었다
발아래 아득한 소실점
더 이상 천적으로부터 훼손당하는 일은 없겠다
하얀 유골 한 구가 바람의 멍든 발을 매만져준다
해 저무는 발코니,
세상이 한눈에 보인다
(<문화일보> 2018년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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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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