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봄비를 맞다』-황동규 시집

이영 기자 / 기사승인 : 2024-06-16 00: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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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詩歷) 66년의 황동규(86) 시인의 18번째 시집
-쉼 없는 시적 자아와의 긴장과 대화 속에서 일궈낸 삶의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
-“걸으리,/가다 서다 하는 내 걸음 참고 함께 걷다/길이 이제 그만 바닥을 지울 때까지”-(‘그날 저녁’),

 

 

 시력(詩歷) 66년의 황동규(86) 시인이 새 시집 봄비를 맞다’(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1958년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시월’, ‘동백나무’, ‘즐거운 편지를 차례로 발표하며 등단한 황동규는 묶어낸 시집마다 특유의 감수성과 지성이 함께 숨 쉬는 시의 진경은 물론 거듭남의 미학으로 스스로의 시적 갱신을 궁구하며 한국 서정시의 새로운 현재를 증거해 왔다. 미수(米壽)를 두 해 앞두고 펴낸 열여덟 번째 시집은 쉼 없는 시적 자아와의 긴장과 대화 속에서 일궈낸 삶의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202010오늘 하루만이라도가 선보였으니 근 4년 만에 다시 새 시집으로 독자들을 찾은 셈이다. 전작에 이어 이번 시집 역시 그간 꾸준히 쓰고 발표한 시 59편과 함께 시 편 편의 주요한 처소(處所)이자 생의 후반 이십 년 가까이 시인의 발걸음과 감각을 붙잡아두고 진한 즐거움을 안겨준 공간에 대한 소회를 담은 산문(‘사당3동 별곡’) 한 편을 더했다.

 

 이번 시집에서 황동규는 녹록지 않은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노정에도 여전히 시적 자아와 현실 속 자아가 주고받는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생의 의미와 시의 운명을 함께 묻고 답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걸으리,/ 가다 서다 하는 내 걸음 참고 함께 걷다/ 길이 이제 그만 바닥을 지울 때까지”-(‘그날 저녁’), “다시 눕혀지더라도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시인의 말’)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삶임을 명료하게 의식하는 그의 시는 누구나 열망하나 쉬이 넘볼 수 없는 여유와 온기와 다감함 역시 잊지 않는다. “끄트머리가 확 돋보이는 시”-(‘사월 어느 날’)를 향한 한결같은 열정과 함께, 삶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긍정의 진술이 가닿는 환한 깨달음, “그렇다, 지금을 반기며 사는 것”-(‘겨울나기’)이란 시인의 다짐을 거듭 곱씹게 된다.

 

 영하의 겨울, 아파트 발코니에 사이좋게 세를 든 소철과 알로에, 문주란의 바랜 색과 빛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적적해하던 심중도 잠시, 붉게 움튼 제라늄 몇 송이와 고사할 줄로만 알았던 고무나무가 석양을 향해 번쩍 쳐든 잎들의 광경에서 시인은 지금을 반기며 사는삶의 태도(‘겨울나기’), 그 아름답고도 절실한 생의 의미를 환기한다.

 

 이번 시집의 서시로 자리한 오색 빛으로는 시집을 통틀어서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시인이 공들여 벼린 가장 최신의 작품으로 전복 껍데기의 이미지와 운명에 빗댄 시()론으로도 읽히는데, 그 시적 사유와 삶의 통찰이 깊고 눈부시기만 하다.

 

 황동규 시 특유의 극서정시(劇抒情詩)는 고목의 속삭임으로도 그 진면모를 드러낸다. “‘이런 일 다 집어치우고 싶지만/봄비가 속삭이듯 불러내자/미처 못 나간 것들이 마저 나가는데/어떻게 막겠나?’” 그렇다. 별것 아닌 사소한 삶의 전경은 살아 숨 쉬는 시()의 열정으로, 삶의 경이(驚異)로 이어진다. 맞다.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시인의 말’) 숭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황동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4년 전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를 상재할 때 앞으로는 좀 건성건성 살아도 되겠구나,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늙음이 코로나 글러브를 끼고 삶을 링 위에 눕혀버린 것이다. 이 시집의 시 태반이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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