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전쟁하는 뇌』 -마리 피츠더프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5-08-02 22: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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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 가능성을 믿을 때, 갈등을 넘어선 공존의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문제는 협력과 공감이 대개 내가 속한 집단에만 작동하며, 집단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
-집단신념이 신성불가침이 되면 구성원들은 흔히 집단신념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을 잃는다
-인간 본성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해야만 비로소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 갈등이 해

 

     

인간은 왜 싸울까?

 

기존 국제정치학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갈등 해결의 핵심으로 보았으나, 신간 전쟁하는 뇌(진실의힘)는 신경과학을 통해 감정과 본능이 분쟁의 근본 원인임을 밝힌다.

 

뇌의 편도체는 위협 상황에서 즉각적 공포와 적대감을 유발하며, 아드레날린·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은 본능적 반응을 강화한다. 이는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로, 타인을 우리그들로 구분해 배타적 집단을 형성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저자 마리 피츠더프는 북아일랜드 분쟁 현장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감정과 본능에 기반한 평화구축 전략을 연구해왔다. 중재네트워크 설립자이자 유엔대학교 국제갈등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그는 기존 정치·국제관계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갈등의 본질을 뇌과학으로 풀어냈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협력하려는 본성을 지니지만, 그 협력은 주로 자기 집단 내에서만 작동한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코끼리와 기수비유처럼, 감정에 해당하는 코끼리가 이성의 기수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 소속 욕구는 안전을 주지만, 동시에 외집단을 비인간화해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극단주의 집단은 명확한 이념과 소속감을 제공해 오히려 정상적선택지로 여겨지며, 소셜미디어는 감정적 확증편향과 가짜뉴스를 확산시켜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뇌의 유연성에 주목한다. 사회적 학습과 제도적 장치로 편도체의 본능을 넘어선 협력이 가능하며, 역사적으로 적대 관계의 전환 사례도 많다. 평화 구축을 위해 저자는 이성 외에 감정적 요인 수용,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수적이며,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기억할 것, 타인의 관점 이해, 포용적 대화 촉진, 사이버 공간의 갈등 관리 기술 개발 등을 제안한다.

 

인간 본성의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 가능성을 믿을 때, 갈등을 넘어선 공존의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저자는 국제정치학의 기존 전제가 잘못됐으며, 인간이 대개 감정과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현대 사회의 갈등을 이해하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비롯해 인류가 오늘날 마주한 다양한 사회갈등의 원인을 이해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우리의 차이를 폭력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20)을 키울 수 있도록 이끈다.

 

인간에게는 타인과 협력하려는 본성도 있다. 집단은 우리에게 안전, 소속감, 의미 등을 제공하고, 집단을 이루는 것은 인류가 존재해온 수백만 년 동안 매우 성공적인 생존전략이었다.

 

문제는 협력과 공감이 대개 내가 속한 집단에만 작동하며, 집단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와 적대하는 타자가 필요하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협력하도록 진화했다. 다만 일부 사람하고만 그렇다.”(83)

 

타인에 대한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거울뉴런의 활동과 옥시토신 분비가 다른 집단을 향한 비인간화, 즉 다른 사람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경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집단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협력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아닌 그들을 배제하고 적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협력은 오히려 폭력을 증폭할 수 있다.

 

집단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에도 큰 영향을 준다. 집단의 일부인 우리는 집단에 이로운 것, 집단이 공유하는 이념을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집단신념은 개인적 견해나 신념을 압도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할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집단에 소속되면 개인의 태도는 집단의 규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바뀐다. 이전의 신념은 폐기되거나 새로운 신념에 맞게 변경될 수 있다. 집단신념이 신성불가침이 되면 구성원들은 흔히 집단신념을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을 잃는다.”(122)

 

상대방에게 공포와 적대감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이고, 다른 집단에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가 정상적이며, 급격히 발달한 소셜미디어가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면, 인간은 평화롭게 살 수 없을까? 이 질문 앞에서 저자는 인간이 집단의 경계를 허물어 낯선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협력을 촉진하는 다양한 규범도 있다. 일례로 국가 간 무역의 활성화는 낯선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신뢰하도록 하는 제도 형성을 촉진했다. “시장에는 보통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상인 간의 공정성을 강화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무역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억제하는 일련의 규제와 행동이 있었다.”(244)

 

저자는 우리에게는 타고난 경향이 있을 뿐 정해진 운명은 없다”(264)고 강조한다. 인간 본성에 갈등을 조장하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조건과 상황에 따라 인간은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때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아무렇지 않게 해치거나 죽였던 이들이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으로 변모한 사례가 많다. 또한 오랫동안 적대관계였던 나라들이 전쟁을 끝내고 교역하고 협력한 사례도 많다.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고 강화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정할 수 있다.”(264~265)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기반한 저자의 접근은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한국어판 추천사를 쓴 문정인 명예교수는 이 책에 담긴 통찰이 첨예해진 남북한 군사대결과 심화하는 한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는 데 아주 적절해 보인다’(11)며 저자의 핵심 주장을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상대방에 접근하라. 일방주의는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둘째, 상대방을 악마화하지 말라. 악마화된 타자와는 공존과 상생의 공간을 만들기 어렵다. 셋째,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으라. 마지막으로 포용과 공감을 통해 우리의 영역을 확대하라. 타자까지 포함하는 우리의 대동사회 건설이 갈등해소와 평화구축의 기본이다.”(10~11)

 

남북한관계, 정치양극화 외의 사회갈등을 대할 때도 명심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사회갈등의 주체인 인간을 있는 그대로이해하려는 이 책의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현실에 적절하게 개입하고 현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현실을 올바로 인식해야만 비로소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 갈등이 해소된 평화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전쟁하는 뇌는 우리가 그런 이상에 도달하도록 돕는 여러 통찰과 제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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