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흐르는 물처럼 상황을 타고 노닐라!’

안재휘 기자 / 기사승인 : 2024-01-09 19: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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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심재(心齋)"를 하면, 옛날의 '작은 나(self, 小我)'가 사라지고, 새로운 큰 나(Self, 大我)'가 탄생한다.
좌망이 마음의 구심(求心)운동이라면, 좌치는 마음의 원심(遠心) 운동인 셈이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이라는 말은 '이치에 밝고 분별력이 있어 적절한 행동으로 자신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바쁘고 지친 사람들은 몇 번의 인문학 강연과 몇 번의 보약으로

 

 

벌써 청룡의 해 2024년도 일주일이 흘렀다. 시간은 그렇게 잘도 흐른다. 더 지나가기 전에 년초에 다짐한 5개의 사자성어를 오늘 마무리한다. 올해도 다음의 5가지 사자성어(四子成語)를 일상의 지표로 삼고 힘차게 출발하였다. 오늘 아침은 나머지 "승물유심""명철보신" 정신에 대해 사유하고, 일상에서 실천할 다짐을 한다.

 

습정양졸(習靜養拙)

화이불창(和而不唱)

승물유심(乘物遊心)

명철보신(明哲保身)

외천활리(畏天活理)

 

내가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장자<인간세>에서였다. '승물유심'이란 '일과 사물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타고 넘어 자유로운 마음에 노니는 삶,을 말한다. ‘실패든 성공이든 인정하고 그것을 즐기라는 거다. 가장 멋진 해석은 흐르는 물처럼 상황을 타고 노닐라는 거다. 하루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사는 거다. 원문은 이렇다.

 

-乘物以遊心(승물이유심) 託不得已以養中至矣(탁부득이이양중지의) 何作爲報也(하작위보야) 莫若爲致命(막약위치명):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遊心) 하십시오.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託不得已), 중심을 기는 데(養中) 전념하십시오. 무엇을 더 꾸며서 보고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그대로 명()을 따르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승물유심(乘物遊心): 노니는 마음으로 세상의 파도를 탄다. 사물이나 일의 변화에 맡겨 조화를 이룸으로써 마음을 노닐게 한다.

탁부득이(託不得已):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둔다.

양중(養中): 중심을 기르는 데 전념한다.

안명(安命): 그저 그대로 명()을 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를 억지로 거역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용하자는 거다. 이를 우리는 '안명론(安命論)'이라 한다. 우리의 운명이 모든 면에서 조금도 움직일 틈이 없이 꽉 짜여 있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그것을 꼼짝없이 그대로 믿는 운명론이나 숙명론과는 다르다. '안명론'은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함)와 비슷하다.

 

'노니는 마음으로 세상사(世上事)의 파도를 타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것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며, 자신이 걷는 길을 풍요롭게 가꾸라'는 말이다. 그리고 삶이 내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 부득이함에 나를 맡기는(託不得已) 순간 순응보다는 돌파하려는 욕구가 더욱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장자의 '거의 다 온 것(則幾矣, 즉기의)'이라는 말은 의지를 최소화하라는 뜻 같다. 원문은 이렇다. "无門无毒(무문무독) 一宅而寓於不得已(일택이우어부득이) 則幾矣(즉기의)." 직역하면, '문도 없고 나갈 구멍도 없거든, '하나'로 집을 삼고, 부득이한 일에만 거하라. 그러면 그런대로 성공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장자는 '마음의 재계(齋戒)'를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나 명예를 버리고 무심한 경지에 이르러야 일체의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음의 눈과 귀로 보고 들어야 사물의 참된 모습에 접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그는 '()''()'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심재(心齋)"라 한다. "심재"를 하면, 일상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옛날의 '작은 나(self, 小我)'가 사라지고, 새로운 큰 나(Self, 大我)'가 탄생한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을 때 명예나 실리 추구에 초연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사회 어느 곳에 있더라도 위험 없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일이 쉽지는 않다.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은둔하면 몰라도, 사회에 참여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살기는 몹시 어렵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심재"를 하며 마음을 완전히 텅 빈 방과 같은 상태가 되면 그 '텅 빈 방이 뿜어내는 흰 빛', 곧 순백의 예지가 생기는 것을 체험하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1) 고요히 머물러야 한다. 가만히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2) 그중에서 특히 '마음을 모으는 일'이 기본 요건이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으나 마음이 함께 앉아 있지 못하고 사방을 쏘다니게 되면 헛일이다. 이렇게 몸은 앉아 있으나 마음이 쏘다니는 상태를 '좌치(坐馳)'라고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좌망(坐忘)과 맞서는 개념이다. 좌망이 마음의 구심(求心)운동이라면, 좌치는 마음의 원심(遠心) 운동인 셈이다.

 

여기서 안명(安命)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역설적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부득이함 속에서도 내가 머물 수 있는 최소한 공간을 찾게 된다. 나를 이루고 있는 삶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바꿀 수는 없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거나 마음을 키우는 일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나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나는 이걸 살에 작은 틈, 아니 균열을 내는 거라고 말한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를 한마디로 말하면, '무위(無爲)의 가르침'이다. 모든 것을 억지로 하거나 꾸며서 하지 말고,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는 것이 '무위의 가르침'이다. 이는 억지로 꾸민 말, 과장한 말, 잔재주를 부리는 간사한 말, 남을 곤경에 몰아넣으려는 말, 남을 억지로 고치려는 말 등을 삼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늘 아침 다시 다짐한다. 그래 이 시를 공유한다.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도나 마르코바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명철보신(明哲保身)"이라는 말은 '이치에 밝고 분별력이 있어 적절한 행동으로 자신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나오고 물러남에 있어 이치에 어긋남 없다', '처세를 잘하여 일신을 잘 보전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저 '자기의 일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데만 똑똑하고 명석하게 굴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어 안타깝다. 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이것을 선택한 것은 '절제되고 균형 잡힌 섭생과 규칙적인 운동이 장기간 축적된 끝에 마침내 찾아오는 은은한 활력을 '명철'하게 되찾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이다.

 

이 말은 시경에 나온다. "사리에 맞고 밝게 몸을 잘 보전해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한 임금을 섬기네"란 시이다. 주나라 선왕 때의 재상 중산보의 덕망을 칭송한 내용이다. 이것도 흔히 좋은 세상에서 누리며 잘 살다가 재앙의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물러나 제 몸과 제 집안을 잘 보전하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쓴다. 실제의 쓰임과는 정반대의 풀이이다.

 

"명철(明哲)"'원래 선악과 시비를 잘 분별한다'는 뜻이다. ()이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고, ()이 시와 비를 판별하는 거다. 그리고 보()는 곁에서 몸을 부축해 주는 거다. 다시 말해, 명이란 함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이득과 손해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한다는 뜻이며, 철은 도리에 맞는 일인지 아니지를 판단하는 거다. 눈치나 보고 손익을 따지며 말을 할 것인지 아닌지를 판별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익과 손해를 잘 판별하고, 나설 때와 침묵할 때를 잘 아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어리고 약한 것을 붙들어 잡아주는 것이 보()이다. 사람들은 제 몸을 지켜 재앙을 면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정민 교수에 의하면, 다산 정약용은 세상에서 "명철보신"이란 말을 제 몸과 제 집안을 보전하는 비결로 여기면서부터 저마다 일신의 안위만 추구할 뿐 나랏일은 뒷전이 되어, 임금이 장차 구가를 다스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고 통탄했다 한다. 고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보기엔 선행을 일삼으며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척하지만, 단지 제 한 몸과 제 가족의 이기적인 행복만을 좇는 무리가 많다. 이것이 바로 제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나는 "명철보신"에서 "보신"에 방점을 찍고 싶다. '건강하게 늙고 싶다'는 말이다. '명철'하게 일상을 영위하여, 아프지 않고 늙고 싶은 거다. 내가 내 스스로 '보신(保身)한다'는 거다. 서울대 김영민 교수에 의하면, 한국은 과로에 젖은 사회다. 정도 이상으로 과로하다가 보니, 몸과 마음 양면으로 보양식을 찾는데 혈안이다. 흥미로운 것은 마음의 보양식을 찾아, 어려운 인생에 쉬운 답을 주는 소위 사회적 멘토의 강연장에 간다. 그리고 육체의 보양식을 찾아서는 고성능 영양제를 찾거나 동네 건강원을 방문한다.

 

절제되고 균형 잡힌 섭생과 규칙적인 운동이 장기간 축적된 끝에 마침내 찾아오는 은은한 활력을 기다릴 여유는 대개의 한국 사람들에게 없다. 꾸준한 마음의 근육 단련을 통해 정교한 생각의 힘을 얻을 여유는 상당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없다. 바쁘고 지친 사람들은 몇 번의 인문학 강연과 몇 번의 보약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쟁취해야만 한다. 멋진 표현이다. 스트레스로 정신의 방광이 터져 나가는 상황에서 한 입 베어 물면, 좁아 터진 방광을 떠나는 오줌처럼 스트레스가 배출되고, 또 한 주를 살아갈 정력이 샘솟게 되는 보양식을 먹어야만 한다. 한국에 성행하는 많은 자칭 멘토의 강연과 건강원과 개소주 집은 후다닥 진행된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닮았다. 며칠 전 <인문 일지>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투쟁이고, 기적'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사고와 재해와 전쟁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생존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지난 연말에도 가자지구에는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 나갔다. 이 시각 살아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비극적 사태를 간신히 모면한 생존자들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저출산, 노인 빈곤, 자살에 있어 최악의 선두를 다투는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살아남고 있었다. 근원 모를 전염병으로부터, 느닷없는 재해로부터, 예고 없는 불운으로부터, 돌발적인 사고로부터 살아남고 있었다. 다들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지진이 없는 곳에서, 테러를 당하지 않은 것에 위로를 해야 했던 거다. 정말 어제 혼자 생각한 것이, 요즈음 우리 사회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기적이고, 지금 살아 있음도 기적이라는 거다. 이를 위해서 "명철보신" 해야 한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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